살아지지 않고 살아가 보자.
‘현재를 놓치고 살지 말자.’
요즘 드는 생각이다.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자주 못했던 것 같다. 밀려오는 책임감과 아이의 울음소리에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가 생전 처음이었으니 도무지 다른 생각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시간이 나질 않았다. 첫째가 어느 정도 자라고 첫 번째로 육체적인 여유가 아주 조금 생겼다. 체력이 조금 생기니 마음의 여유 또한 함께 왔다. 한 번씩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즐겁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벅차올라 눈물이 찔끔 나온 적도 있다. 그럴 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내가 이렇게 행복한 나날들 속에 살아가고 있구나. 아이가 자라고 점차 내가 아닌 다른 세상을 알게 되면 지금 이 순간들이 무척이나 그립겠구나.’ 어떻게 하면 지금 현재의 행복을 잊지 않고 매 순간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러나 곧 밀려오는 집안일과 육아에 치여 금세 생각이 달아나곤 했었다.
또다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신생아 돌보기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첫째와 둘째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컥한다. 요즘은 그게 더 잦아졌다. 아마도 꼴에 한번 육아를 경험했다고 여유가 좀 생겼나 보다. 아니면 나도 한 인간으로서 성장한 것일까. 그러면서 또다시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순간들을 힘들어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힘들어하며 지내다 문득 거울을 보며 ‘이젠 나도 늙어버렸구나!’ 하고는 슬퍼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요즘도 항상 넘쳐나는 집안일들과 두 아이를 케어하는 일에 ‘현재를 놓치지 말고 살아가기.’가 잘 실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실행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일에 지쳐 지낸다면 눈 깜빡할 사이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늙어버릴 것만 같았다. 더 자주 되새겨야 한다. 엄마로서의 나가 아닌 내 자신으로써의 소소하고 작은 업적을 만들고 죽기 위해서. 아이들이 자라서 멋진 우리 엄마라고 불릴만한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버리는 못된 엄마이다. 엄마 5년 차이지만 매일매일이 새롭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어디선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자식은 부모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에요. 아이를 본인의 뜻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게 정말 쉬운 줄 알았다. 그냥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특정 직업을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가 사고하는 방법이나 성격 또한 부모가 강압적으로 주입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는 나와 같겠지, 나와 성격이 닮았으니 이렇게 생각해야 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맞아.’라고 생각해버렸다. 아닌 척했지만 나도 내 아이들에게 흔히 말이 안 통하는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세상을 살아본지 5년, 2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아이들도 제 나름의 생각이 있어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사실을 나는 무시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무안해하지 않게 배려해서 말하는 첫째를 보며 아차 싶었던 순간이 많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니 어쩌면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아이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나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았던 나 자신과 맞닥뜨렸다. 그저 내가 돌봐야 할 대상들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하고는 말이다. 아주 잘못되었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생각들을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이 모두 잠에 든 후에야 반성한다. 아이의 마음을 외면하지 말걸,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눈을 맞출걸.
얼마 전 돌아다니는 짤에서 오은영 박사가 한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고 했지만 정작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따뜻한 온기였어요.”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말해본다, ‘내일은 부디 따뜻한 온기와 함께 아이들과 따뜻한 하루를 보내보자.’
살아지지 않고 살아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