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기 Aug 14. 2020

햇살이 드는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전에 말씀하셨던 섹슈얼한 부분은 어떠세요?"

"아 네 호전된 거 같아요."


2주가 지나갔다. 진료를 받으러 갔다.

기분은 서서히 좀 올라오는 느낌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처방으로 가보자고 했다. 아침약(항우울제)을 하나 늘렸다. (약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군.)

취침 전 약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섹슈얼한 부분에 대해서

의사에게 말하기 전,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팽배한 가운데 아내에게 발기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상담을 한 후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도 말했다. 아내는 오히려 가볍게 받아주었다.

계속 그렇지는 않을 거라며 너무 자책하지 말라며 도닥여주었다. 포옹해주었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따뜻함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아래가 팽팽해진 것을 느끼고 안심이 되었다. 의사의 말대로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아니었다. 아내의 말대로 계속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래. 기분도 좀 나아지고 있고 좋아질 거야'

  

우울증은 약을 먹으면 좋아지는 병이라는 말을 실감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는 걸, 지금 이 괴로움도 지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늘 까먹는다는 게 문제다.) 


4월 16일

누가 보지도 않을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은 올리지 못하고

스토리에 노란 추모의 리본을 그렸다.



이틀 후 4/18

우울증 한 달째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술을 먹지 않은지 한 달이 지났다.

술을 안 먹으니 살이 빠졌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라서 신기했다

술을 안 먹는다고 이렇게 살이 빠지다니.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을 읽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떨어진 듯하다.
'다소 곤란한 감정'을 다 읽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시 2주 후 진료.
기분은 그저 그런 정도 오르락내리락한다.
아내랑 있으면 괜찮은데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더 가라앉는다. 불안함 무가치감이 엄습했다
밥맛도 좀 돌아온 것 같다.
성적인 부분도 정상이다.
잠은 지금도 괜찮긴 한데 조금 더 자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취침 전 약을 하나 더 했다. 멍해지거나 그러면 빼고 먹으면 된다고 했다.
어지럼증 예전보다 심하다고 하자 지난번에 추가한 아침 약 하나를 뺐다.
만성적인 두통이 있는데 진통제 먹어도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커피도 한두 잔 괜찮지만 디카페인을 권합니다.
아내분이 힘이 되어주시는군요!
술은 계속 안 드시고 계시죠?

좋습니다!


다음날 아내와 일 때문에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사무실에 갔다.
혼자 집에 있으니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미안함,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이 느껴졌다.

햇볕을 쬐는 게 우울증에 좋다던데
햇빛을 쬐러 창가로 갔다. 커튼에 투과해 들어오는 봄 햇살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창 밖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죽음을 떠올렸다.
떨어져 죽기에 3층은 너무 낮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사무실에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네가 해외에 가있는 동안 기분이 많이 다운되었었고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널 생각하니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었다.
그 말을 듣고 아내도 울면서 나를 위로를 해주었다.


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면 차마 죽지는 못하겠다는 마음으로 죽음은 후퇴한다


그 후로 기분은 다시 좀  내려갔고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계속 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약발이 오르는지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