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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Aug 09. 2020

우울 후 섹스 불가

이 감각은 우울의 증상인지 약의 부작용인지

약을 먹고 기운이 더 없어진 것 같았다. 낮잠이 참기 힘들 정도로 많이 왔다

낮잠이 몰려오면 당장 어디든 머리를 붙이고 잠들고 싶었다.

밤에도 더 잘 잤다 꿈이 없어졌다 꿈을 꾸지 않고 예전보다 깊게 자는 것이 좋긴 했지만

약에게 꿈을 뺏긴 것 같아 뭔가 서운한 기분도 들었다.

잠은 잘 잤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멍한 기운에 뭉그적뭉그적거렸다


일주일 후 진료에서 상태를 말하자 아침 약은 더 에너지를 올리는 약으로 강화해줬다
proctin 20mg: 지난 약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A11ABBBBB0367

취침 전 약은 약효가 약한 걸로 바꿨다
-알프라나락스: 잠의 낙원을 향하여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A11AOOOOO3851


-졸민: 이름도 졸리는 이름이다.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A11ABBBBB0630


약을 바꾼 후 다음 월요일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런데 약 먹고 난 후 식욕이 저하되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고 식사량도 줄었다.

점심에는 입맛이 없었는데 저녁엔 배가 고파서 잘 먹었다.

성욕도 줄었다.

발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지난 진료에서 선생님이 섹슈얼한 부분은 어떻냐고 물었었는데 그때는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물어보기 전까지 섹스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내가 요즘 성욕이 어땠지?'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 몸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발기가 잘 되지 않았다. 자극을 주어도 섹슈얼한 상상을 하여도 성기는 반응이 없었다.

처음 겪는 경험이라 낯설고 곤혹스러웠다.

나와 상관없는 물렁한 피부 덩어리가 친분없는 이방인, 에일리언 시체 같았다.

계속 이러면 어떻게 하지? 불안해졌다. 불안해지니까 더 신경이 쓰이고 반응 없는 성기가 또 곤혹스럽고

그래서 또 불안함이 반복되었다.

울적하고 무가치감이 느껴졌다.


저녁 먹고 나서부터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보통 하루 중에 점심보다 저녁때 기분이 가벼웠다.


예전에 철야 야근이 많이 하던 때가 생각났다.

한 번씩 불안함에 가슴 두근거림이 있었다.
해야 할 업무를 앞두고 있을 때, 수익 걱정이 될 때 가슴이 갑갑해졌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서 들린 전화벨 소리에 갑자기 놀라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2주 후 진료일
선생님은 식욕저하는 약 때문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약을 또 바꿔주었다
파마파록세틴정10mg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2017033100010
파피온서방정(부프로피온염산염) (주)한국파마
http://medinavi.co.kr/%20pill/p/201605177.html

"선생님 전에 섹슈얼한 부분에 대해서 물으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발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약 부작용 때문인가요?"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성기능 저하라고 나오는 게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물어보지 않으면 불안과 걱정을 더 키울 것 같았다.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는 듯 가볍게 하지만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발기 안 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기분과 의욕이 저하되니까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항우울제에 의한 부작용은 사정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지만 발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 처음 왔을 때 '딱 봐도 우울증'이라고 해서 좀 슬펐어요. 집에 가면서 눈물이 났어요."

선생님은 '그 당시에 딱 봐도 우울이다'였을 뿐 계속 그렇지 않을 거라고 기분은 늘 업다운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적인 부분도 계속 그런 것은 아니라며 일상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나아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치료받고 그러면 좋아질 것이라고 응원해주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기분이 더 올라와야 할 것 같다는 말로 진료를 마치고 2주 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진료실을 나와 안내데스크에서 약을 받고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면서

휴대폰 메모장에 진료 내용을 기록하였다.



집중하고 생각하는데 힘이 많이 들다 보니 문장이 짧아진다.

오늘도 여기서 그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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