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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09. 2016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는가?

이지상, ‘언제나 여행처럼’을 읽고. 아니, 읽다가

앞구르기

 앞구르기를 하였다. 독서 모임까지 이제 다섯 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아직 책도 다 읽지 못했다.일단 워드를 실행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정확히 금요일 밤부터 두통이 시작되었다. 몸도 쑤신다. 아내는 놀아서 그런 거라고 농 섞인 말은 천진하게 웃으면서 건넸다. 으 억울해. 왜 놀면 아픈 거냐고! 실제로 내 생에서 가장 아파서 병원까지 갔던 건 바로 제대로 놀 때인 여행 중이었다! 요즘은 일을 하고 있다. 일하다가 주말이 되니까 두통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친구가 사장인 사무실이고 나와 뜻이 잘 맞는 녀석, -나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나- 어쨌든 비슷한 아비투스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녀석이라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거의. 조금은 있다는 거겠지. 그런데 직장 생활이라면 직장생활이라 할 수 있는 일에서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은 요즘, 아니, 바로 지금 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모임 활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을 내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이 있고, 써야 할 글이 생겨서 이렇게 쓰고 있고, 챙겨야 할 모임도 있다. 오늘 아침에는 두 명이 참석하지 못한다고 카톡이 왔다. 아직 책도 다 읽지 못했다. 앞구르기를 하였다. 글이 잘 안나오면 앞구르기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채 휴대전화 메모장 안에서 몇 달째 꼼작 달싹 못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나? 라는 생각에 뒤구르기도 한 번 하였다. 존재의 비극이다.



존재의 비극

사실 나는 이 책 ‘언제나 여행처럼’을 2011년 3월에 한 번 읽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모든 게 다르게 보이는 상황에 여행의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여행에 물든 이 마음을 잘 정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책에서 공감되는 부분을 수첩에 직접 필사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읽으니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다. 빌어먹을...... 그래, 뭐 그래, 그럴 수도 있다. 5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그때 뭘 필사했었는지 찾아보자. 찾아보니 이 부분이 있구나.


역동적 뿌리내리기는 떠돎과 안주를 동시에 허락하지 않지만 두 가지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움직이면서 뿌리내리기를 상상하고뿌리를 내리면서 또 떠나는 것을 상상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실행한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앞에 이런 글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뿌리를 내리는 만큼 여행자들은 뿌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린다.

이것이 존재의 비극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역동적으로 뿌리를 내릴 때

삶은 역동적이 된다.”


그렇다. 역동적이든, 정적이든, 뿌리든, 꽃이든 그 전에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보단 내 삶에 어느 정도는 비극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곳곳에 내 발목을 잡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잠재된 비극의 씨앗들이 비극으로 꽃피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내 마음인 것 같다. 그저 취미로 하는 활동에 누구든 참석 안 하면 어떻고, 책을 안 읽으면 어떤가? 만나서 즐겁게 떠들면 또 좋으면서 말이다.책을 읽어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이렇게 모임에 신경을 쓰고 내겐 상의도 없이 카페 매니저를 넘긴 나가신을 원망하다가, 준석이까지 참석 안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다가, 아우~어제 무한도전을 왜 그렇게 재미있어서 책을 멀리하게 하였을까?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을 하며 비극의 꽃을 나 스스로 화사하게 피우고 있는 내 자신을 본 것이다. 여행할 때 자유로운 이유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인간관계가 순수하다는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 사람에게 잘 보여야 월급을 받을 수 있어. 나중에 또 만날지도 모르는데 인맥관리를 잘해야겠지.’ 이런 생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순수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볼 수 있는 것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나 또한 여행에서 그런 만남을 경험하였고,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래서 어떤 인간관계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이 모임에서 내가 도대체 지금 뭘 바라고 있는 것인가?



언제나 리좀처럼

      

“들뢰즈와 가타리는 서양의 정통적 형이상학을 거대한 수목으로 보고,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뿌리줄기인 리좀을 통해 설명한다.

...... 수목적인 체계에서는 고정된 정체성이 중요하지만,

리좀에서는 하나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 뻗어나가고 변신하는 가운데

‘되기’가 중요해진다.”  


작가는 들뢰즈의 사상을 바탕으로 노마드 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들뢰즈는 죽기 전까지 프랑스를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런 철학자가 이야기 하는 유목적인 즉 노마드적인 삶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자신이 어디에 접속하는가에 따라 정체성은 수 없이 변신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정해놓은 하나의 역할에 매여 거대한 체계의 일부분으로 사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무수히 많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유로운 삶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항상 문제는 이 생각을 잊고 있을 때 생긴다. 누군가 정해준 역할에 매여서 남편이니까, 아들이니까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생각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난 여행자니까 이렇게 해야 해. 라는 하나의 생각만 갖고 여행을 한다면 이 지구를 몇 바퀴나 돈들 그게 무슨 제대로 된 여행자일까? 제대로 된 여행자라는 하나의 개념도 없는 것이다. 아무도 당신의 여행을 또 삶을 규정해 줄 수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어떤 일도 나의 탓도 당신 탓도 아니다. 스스로를 끊어버리고, 잘라내고,가볍게, 어디든 연결하고 접속될 수 있는 마음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웬일인지 책을 읽는 게 힘들었다. 언제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모임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되도록 다른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 것. 책을 다 읽지 않았다고 나를 벌할 사람도 없고, 몇 명이 모이든 모인 사람끼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되는 데 말이다. 내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언제나 여행처럼 사는 것은 나를 붙잡는 그런 내 마음을 버리고 사는게 아닐까? 좋은 사람을 만나면 즐겁게 웃듯이 그렇게 이 책을 읽으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씩 앞구르기를 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좋지 않겠소? 라는 것이 이 책에서 많은 여행의 경험과 여러 사상들을 언급하면서 하려는 바로 그 이야기가 아닐까?

언제나 여행처럼 그리고 언제나 리좀처럼 그리고 언제나 정기처럼 그리고 언제는 정기가 아닌 것처럼.



책소개

이지상, '언제나 여행처럼'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2780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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