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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10. 2016

화녀, 삼일빌딩 그리고 63빌딩 그리고 롯데월드타워

김기영 감독, 윤여정 주연, 영화 '화녀'를 보고







"서울에 31층 빌딩이 있데. 너나나나 헤어져도 그걸 쳐다보고 살자."
"31층?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 하하하하"

 



-명자와 경희가 버스에서 내리자 육중한 청계고가도로 너머로 우뚝 솟은 삼일빌딩이 보인다. 그 거대한 스케일 앞에서 인물들은 왜소해보인다



"경희야 돈많이 벌어."
"잊지마. 31층 빌딩이 우리 암호야."
"그래."

김기영, 화녀(1971)에서 주인공 명자(윤여정)가 상경하는 버스안에서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다.



김기영 감독의 1971년작 '화녀'는 삼일빌딩으로 시작해서 삼일빌딩으로 끝난다.

1971년.
검색을 해보니, 이 해는 나름 여러 의미가 있다.

1. 일단 삼일빌딩이 완공된 해이다
삼미그룹의 발주로 김중업이 설계한 삼일 빌딩은 지하2층 지상31층, 높이110 m에 달하는 규모로써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마천루라고 할 수 있다.

2.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마지막 해였다.(1967~1971)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박정희의 주도하에 시작된 것인줄 알았는데 이승만정권부터 구상된 것이었고 4.19혁명으로 시작되지 못하다가 장면정권에 검토 수립된 것을 박정희 때 본격 시행한 것이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일본에게 6억 받았는데, 국가민족주의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모종의 성과를 보이는 스펙타클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로 삼일 빌딩 완공.

3.새마을 운동이 본격적으로 명명되어 전국적으로 시행된 해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벌어진 새마을 운동은 농촌을 살리기 위한 운동이 아니었다. 고도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산업도시의 인력이 필요했고 농촌의 기계화 근대화로 농촌 커뮤니티는 와해되고 그 인력은 고스란히 도시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화녀의 주인공 명자 또한 농촌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남자를 살해한 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서울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처음 올려다보는 건물이 삼일빌딩이다. 목가적 가부장제에서 근대화된 가부장제로 이행하는 시점에 자본주의는 피같은 돈을 착취해, 마천루라는 탐욕의 남근을 명자의 눈앞에서, 말그대로 하늘을 긁듯이 발끈 세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 마천루는 그렇게 자본주의사회에서 탐욕의 상징적인 장치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고향친구와의 약속을 통해 전이된 노스텔지어의 표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별의 확인이며  동시에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두려움이기도하다. 명자는 그 후로 삼일빌딩을 다시 보지 못한다.



 

- 영화는 청계고가도로를 따라 그 소실점에 삼일빌딩이 서있는 장면이 서서히 줌인되면서 끝난다. 삼일빌딩 위에 김기영 감독의 이름이 오버랩된다.
 



그 후, 한국 최고의 마천루였던 31빌딩은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 한 해 전인 1985년에 완공된 63빌딩에게 그 명성을 내어준다. 삼일빌딩의 곱배기,  63빌딩.


63빌딩이 지금은 한강 위로 너울너울 황금빛 망토를 펼치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지만, 곧 2016년 12월 완공예정인 123층 규모의 롯데월드타워에게 그 탐욕의 권좌를 물려줄것이다. 63빌딩의 곱배기, 롯데월드타워.  


  명자가 상경했던 1971년보다 현재  이 도시의 탐욕은 마천루의 높이만큼이나 더욱 복잡해지고 치밀해졌다.  

새마을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새마을을 영어로 하면 뉴타운이다.) 마천루는 멈추지 않고 점점 더 높아진다.

자본의 축적을 위해 모든 것이 동원된다.

도로에 구멍이 나도 건물에 금이 가도 상관없다. 자본가는 죽지 않는다.

호수에 거대하고 귀여운 노란 고무오리 하나 띄어놓고 모른척 덮으면 그만이다.

성수대교도 삼풍백화점도 까맣게 잊고 우리들은 살고있지 않은가

잊고 사는 동안 건물들은 계속 붕괴되고 배는 가라앉고

명자는 탐욕과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계속 부활한다.


기억해보자.

1971년 사장집에 쥐약을 놓던 명자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 그러니까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기 1년 전, 어느 시골에서 끔직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지존파로 되살아난다. 그들은 압구정 오렌지족, 부자놈들을 다 죽이지 못해 한이 된다고 말했다. 고향을 떠난 이방인-명자가 진공의 고향에 살게 된 괴물-지존파로 부활한 것이다.

2016년 롯데월드타워가 완성되는 날이면 명자는 또 어떤 얼굴로 그 앞에 서있을까?

컬트적 사이비 종교의 신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박정희교같은......

또 마천루는 하늘을 긁을 것이고

또 마천루는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또 죽을 것이다.  






* 지존파와 삼풍백화점 관련해서는 영화 '논픽션다이어리'를 강력! 추천한다.


* 2014년에 쓴 글인데 정말 사이비 종교같은 것들이 나라말아 먹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영화정보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87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cV5-YDmx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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