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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10. 2016

덜 가지려다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조슈아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


어머니의 죽음1 -조슈아의 경우


"2009년,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났다. 당시 내가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는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일을 했다."

-조슈아,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 책 읽는 수요일, p.17~18


  

“한 남자의 어머니가 죽었다. 어머니의 방을 정리하던 그는 먼지 덮인 다섯 개의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그의 어린 시절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가장 먼저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집에 있는 물건들도 정리했다. 자동차도 팔고, 집도 팔았다. 편안한 소파 하나와 책 몇 권만이 남았다. 그렇게 그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 뒤표지 글   


 


미니멀하지 못한 책을 보는 지겨움

  조슈아의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를 읽는 내내 데자뷔를 보는 듯했다. '앞에서 읽은 내용 같은데 또 나오네.' 아무리 책장을 넘겨도 제자리걸음이다. 다음 챕터에는 다른 뭔가 있을까 기대하고 보지만 또 같은 말의 반복이다. 잔소리 같다. 책의 중반이 되어서야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방법에 대해서 나오지만, 그것도 목록화하고 요약해서 나오고 끝나버린다. 그리곤 다시 앞에서 얘기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책이 전혀 미니멀하지 못하다.

조슈아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간단하게 세 줄로 요약할 수 있다.


 

1. 나 한때 당신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갔어. 자랑은 아냐.


2. 그런데 다 때려치우고 필요 없는 건 없애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 쿨하지? 뭐 자랑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야.


3. 당신들도 이렇게 훌륭한 나처럼 해봐. 지금 바로. 그것도 못하면 잘 사는 게 아냐.


 

  미니멀리즘도 친절하게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려준다.


"미니멀리즘은 살아가며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주는 도구로서 이를 통해 만족, 충만감,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고래로부터 전해왔던 '검소하고 청빈한 삶',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라.' '무소유' 등의 철학과 별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내세운 미니멀 라이프라는 삶을 실천해 나가면서 겪었던 구체적인 경험이라든가 느꼈던 감정, 깨달음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책은 앞의 1-2-3, 1-2-3의 반복뿐이다. 지겹다.  




의미 혹은 자의식의 과잉

책에는 구체적인 삶의 사례 이야기가 없이 과도한 의미 부여만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녀석들인지 자랑하려고 이 얘길 쓴 건 아니다."라고 자랑한다.

"아무 관계없다. 하지만 넓게 보면 모든 것과 관계가 있다."라는 식의 하나 마나 한 논리의 이야기도 나온다. 넓게 봐서 관계없는 게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엄격한 규율이나 규칙에 굴복하지 않고 미니멀 리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하였지만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몸도 좋아지고 있다."는 강박적 상태의 지속, "내게 군것질은 죄악"이라는 교조적 태도, 심지어 "상대의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짐 덩어리, 암, 기생충,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혐오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무섭기까지하다. 이 두 남자의 인간적인 감수성은 어떤 것인가? 미니멀리스트로 살지 않으면, 아니 그전에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벌레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이 정도면 이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추구하는 삶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단지 사람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물건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라고 하지만 정작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이 남자들이다.

물건은 물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물건을 없애지 않아도 물건은 물건일 뿐이다.

그러니 이 남자들은 주구장창 물건을 없애고 있지만 정작 없애야 할 것은 바로 물건이 아니라 그 의미다.  


"내게 미쳤다고 말해도 좋다. 행복과 열정과 자유로 가득한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미친 짓이라면 나는 미친놈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잠깐만이라도 솔직해져 보자. 당신도 내심으로 나처럼 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직접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당신의 표정과 몸짓이 말하고 있다. 난 그걸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궁예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 꽉 찬 얄궂은 두 남자의 미니멀리즘은 자의식 과잉의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죽음 후 어머니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물건과 추억의 상관관계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고 하는 부분이다.


  

"내 물건이 나를 대신하지 않는다. 나는 소유물 이상의 존재다."라고 한다.

그런데 내 물건이 나를 대신하지 않기에, 나는 소유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물건보다 우위에 둠으로서 물건은 없애야 할 존재며 자신들과 대립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너무 애쓰며 사는 것 아닌가

  네팔 트래킹을 할 때의 일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자연의 풍광에 넋을 놓고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무리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우리 뒤에서 오던 미국인들로 보이는 단체 등산객이었다. 목적지에 도달하자 그 성취감을 시끄러운 함성소리를 통해 배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자연과 삶은 싸워서 이겨야하고 정복해야하는 하나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을 때 그 미국인 등산객들이 떠오르게 된 것 또한, 이 두 남자가 말하는 미니멀 라이프라는 방식이 미션 클리어!, 임무 완료!를 외칠 듯한 태도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작 미니멀 라이프는 애쓰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인데 이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애쓰는 삶을 사는 것이다.그러한 여유 없는 삶의 방식은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때로는 그 노력이 지나칠 정도다."


"내 완벽주의 성향을 더욱더 괴롭히는 것은 미니멀리즘에 어울리지 않은 소유물을 지적하는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정신없이' 강행군한 12일간의 여행"


"라이언은 목발에 의지하며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부상 투혼"


"텔레비전을 없애고 나면 텔레비전 보던 시간에

1 집안을 정리할 수 있다.

2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

3 운동할 수 있다.

4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5 멋진 일을 할 수 있다.

6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

7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텔레비전을 안 보는 대신 무려 일곱 가지나 할 일을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창조', '꿈', '멋진', '불가능한', '의미 있는'등은 추상적이어서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그냥 텔레비전 보던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면 안되는 건가?


  

이렇듯 미니멀 라이프까지 성취해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대상화한다면 이 남자들에게는 언젠가 다시 삶의 공허함과 절망이 올지도 모른다. 정말 조슈아는 산 위에 있는 것일까? 시시포스가 직장, 연봉, 명성 등이라는 바위에서 미니멀 라이프로 바위만 바꾼 채 언덕 위로 올리고 굴러내려 가고 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 이루어야 하고 30가지나 되는 깨달음을 줄줄이 읊어내야 하고 사명을 자신에게 부과해 채찍질해야 하는 이런 삶이 미니멀 라이프라면 나는 사양하고 싶다.




      

어머니의 죽음2 -뫼르소의 경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 나는 그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 지금은 어쩐지 어머니가 죽지 않은 것이나 별다름이 없는 듯한 상태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책세상, p21


알베르 카뮈

여기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조슈아의 경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 자기 어머니가 죽고 난 바로 이튿날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그리고 또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한, 자기는 '전에도 행복하였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분명하게 말하며, 사형집행을 받는 날에는 단두대 주위로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기'를 원하는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 죽음, 진실들이나 존재들을 하나의 원칙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복수성(複數性), 현실이 담고 있는 지각할 수 없는 어둠, 우연, 바로 이런 것들이 부조리의 제극점(諸極點)들이다."

-장 폴 사르트르, <이방인> 해설, '이방인', 책세상, p164~165  


" 즉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그에게 관례대로의 공식에 따라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그 점에 대해서 진정하게 뉘우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뉘앙스 때문에 그는 유죄선고를 받게 된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미국판 서문, '이방인', 책세상, p.8    



위의 인용문을 통해 나는 삶 앞에 '미니멀'이라는 수식어가 들어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조슈아와 라이언이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잘 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내린 미니멀리즘의 정의에 정확히 나와 있다.


  더 가지려다 놓쳐버린 것들 못지않게, 덜 가지려다 놓쳐버린 것 중에서도 분명 소중한 것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들을 건져내서 '미니멀' 대신 삶의 앞에 놓아야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적어도 더 솔직한 삶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아닌 존재로서의 삶.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대면하는 삶. 그것이 벌레 같은 삶일지라도.   





Ps.  "사람이 좀 쓸모없으면 어때. 사람인데." (feat. 윤두준)

                                                                    드라마 <퐁당퐁당러브>에서



책정보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6260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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