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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16. 2016

걷고 만나고 기억하고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지 15가지 인문적 시선으로 살펴보는 책인데 요즘은 워낙 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어쨌든 도시와 건축을 보는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살피고 있다. 여기저기 투고한 글들을 모아 15개의 큰 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장별로 나누어 놓은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난하다.


여기서는 책에 관하여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이야기 하겠다.

1. 속도

사람은 걸어서 한 시간에 4킬로미터를 간다. 

다음을 보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를 보면 , 1보(20.8센티, 6=124.8센티)를 단위로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재었던 것이다. 지구가 한 바퀴 도는 1년 주기를 상징하는 360보가 1리로 되었고 10리(4.48키로)마다 작은 역을, 30리(13.48키로)를 1식으로 하여 한 개의 큰 역을 설치 하였다. 이 거리가 바로 반나절 거리였다. 그리고 인근 도시들은 성인 걸음으로 한나절 거리인 60리 상거한 위치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국 도시의 구성기준은 바로 사람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하루거리, 즉 걸을 수 있는 왕복과 편도의 거리를 지형과 지세에 맞추어 도시를 배열했다. 이러한 모듈 속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연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다."
- 한재수, '과거 속에서 보는 미래', [장소와 정거장-임시 유토피아] 중에서-



10리가 약 4킬로미터다. 즉 한 시간에 10리를 갔으니 30리면 3시간 걸리는 거리다. 9시에 출발하면 12시에 작은 마을이 나와서 주막에서 점심을 먹는다. 좀 쉬다가 또 그만큼 걸으면 저녁에 이웃 도시에 도착하는 것이다. 60리를 걸으면 하루일과가 마무리 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옛부터 휴먼 스케일을 바탕으로 한 도시의 형성 원리가 있었고, 그 속에서 인간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힘들이지 않는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환경으로 도시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저자가 계속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도시를 가득 메우고 보다 빨리, 보다 멀리만을 추구하는 도시 개발 논리 속에서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도시에서 여유롭게 거닐지 못한다.

저자가 예를 든 홍대의 '걷고 싶은 거리'는 과연 정말 걷고 싶은 거리일까? 주말이나 '불금'에 홍대를 가 본 사람이라면 쉽게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가게에서 똑같은 물건을 팔고 나아가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그 거리만의 색깔을 지워버리는 동안 우리는 사람의 물결에 휩쓸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즐기고 싶은지 잊어버린다. 저자는 가게가 많아야 한다고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아서 숨을 쉴 수 없다. 적어도 홍대를 비롯한 이른 바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곳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홍대에는 입체적인 보행로나, 전시벽, 벤치가 있는 가로수 등이 있지만 그 조차도 범람하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엔 힘에 겨워보인다. 이렇게 미친 듯이 사람들로 넘쳐나는 홍대도 언젠가는 죽지 않을까?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거리가 되면 그때 유기체로서 홍대도 그 생명력을 다 하고 또 다른 켜가 쌓일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삶의 방식과 경제적인 측면까지 중층적으로 엮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지역을 살린 사람이 쫒겨나고 지역민도 쫒겨나고 거대자본에 의해 그 곳만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그러면 자본은 또 돈이 되는 지역을 찾아 떠나버리고 그 지역은 버림받아 피폐해진다. 자본의 논리로만 발전하는 도시는 계속 이런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돈있는 자들은 그런 문제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쫒겨난 사람들이 만든 곳에 가서 뒤통수를 치고 다시 쫓아내고 그곳을 삼켜버리면 되기때문이다. 홍대 다음엔 상수동, 연남동, 망원동...... 아귀처럼 다 먹어치워버릴 것이다. 속도를 줄여야한다. 돈의 속도가 아닌 사람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 


2. 사건

이 책에서 가장 마뜩잖은 것은 광화문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에 바라볼 것이 없으니 가운데를 보게되고, 남들에게 노출되고 싶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그런 구성이기 때문에 시민에게 개방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지만 항상 정치적 시위공간이 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화가 빡 난다. 그토록 도시와 인간, 도시와 자연의 관계를 주구장창 이야기 하면서 왜 정치적 시위는 타자화 시키는 것일까? 시위를 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닌가? 광화문 광장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또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것 같다. 일단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지금 광화문 광장은 잘못된 계획이다. 광화문 광장은 섬이다. 도로에 둘러싸여 접근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한쪽 인도에서 더 확장되는 방식으로 계획이 되었더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시위나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시위를 하기도 효율적이지 않다. 광장 둘레의 도로로 경찰차벽을 쌓아버리면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다. 그럼에도 거기가 시위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역사적, 공간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볼게 없어서 시위나 한다는 말이 나오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일단 공간적으로 주변에 관공서가 많고 주미 대사관이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사옥이 있다. 멀리는 청와대가 있다. 시위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대상이 그 곳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시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그 곳에서 6.10 민주화 운동이 퍼져나갔다. 시청광장도 마찬가지다. 여의도 또한 어떤가? 국회가 여의도에 있다. 그래서 거기서 시위를 한다. 여의도를 공원을로 만들어서 시위를 하지 않는다고? 늘 거기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꼼수다 콘서트도 거기서 했다. 저자가 제안한 계획처럼 광화문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그 곳을 더 잘 찾게 된다면 시위 또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더 쉽게 주변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사람들이 편안한 속도로 도시를 거닐 수 있게 된다면 거기에서는 시위를 포함해 이벤트가 벌어진다. 크고 작은 사건이 생성되는 것이다. 유유자적 걷다가 저자가 그렇게 좋아하는 카페도 갈 수 있고, 거리 한 켠에서 잠깐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작은 공연이나 전시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사람들의 만남은 풍요로워진다. 그런 만남이 많아진다는 것은 기억에 남는 추억이 쌓이는 것일 테다.


3. 기억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 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이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는가? 어렸으니 상관하지도 않았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다른 것들이다. 친구들과 흙장난하며 놀았던 놀이터, 집 밖 골목 '얼음 쨍'을 하던 전봇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던 이웃집 벽의 촉감. 이런 것들은 어렴풋이나마, 어떤 것은 아주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도시 속에서 살면서 쌓아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런 기억이 많아지려면 도시 속에는 이런 저런 장소가 다양해야 할 텐데, 우리는 늘 면적이 몇 평이고 가격이 얼마인지만 보게 된다. 부동산에 붙어 있는 저 많은 숫자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추억을 쌓게 할 순 없을 것이다. 아, 그 숫자들 때문에 쫓겨나고 절망하고 막막함을 느꼈던 감정은 상처로 남아 있을 순 있겠다.

자동차가 아닌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을 가진 도시, 스타벅스에서 맥북에어만 쳐다 볼 수도 있지만 동네 카페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게 어색하지 않는 도시가 우리에겐 더 편안함을 주지 않을까?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근현대에 이루어진 것들을 모두 없애는 것도 잘못된 방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광화문 광장을 옛날 조선시대 저잣거리 처럼 만들자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우리 삶에 맨인블랙의 광선을 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사는 도시에 조금더 관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결국 훌륭한 건축은 훌륭한 건축주로부터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빼어나게 전문적으로 훌륭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우리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해줄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동네구경이 아니라, 가진 사람만의 이익이 아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을 들여다 보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말이다.



책정보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247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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