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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19. 2016

죽음이  쌓이는 시간

G.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100쪽 읽고





온 마을에 기면증이 왔다. 사람들은 갑자기 잠들었다.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마을에 게으름은 그렇게 찾아왔다. [처음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57P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면 피곤할 수 있지. 시간이 없어서 쉬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잠깐은 점점 길어졌다. 물론 그 잠깐이 길어졌다는 것은 잠에서 깨어나서야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은 선 채로 잠이 들었다.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든 채 잠이 들었다. 컴퓨터에는 계속 '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이 입력되었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회사에서 갑자기 잠들었다가 모니터로 돌진하는 머리의 무게에 놀란 하비에르는 눈을 반쯤 뜨고 얼마 동안이나 잠이 들어 버린 것인지 헤아리다 보니 내가 이러려고 회사에 다니나 자괴감이 들었다. 건축사무소에 다니던 그는 입찰에 당선되기 위해 악착같이 철야를 하는 사람들에 [공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튼 그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컴퓨터그래픽들을 가지고 현상 설계라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그것만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112P변용

 

하비에르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야근하고 돌아오던 택시 안이었다. 이제 꿈속의 사람들도 완전히 살아서 꿈 밖으로 나왔다. 조수석에 앉아 뻑뻑한 눈을 겨우 뜨고 있으니 새벽의 어두운 장막이 덮인 도로 위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저기 왜 사람이 걸어가고 있나 의아해하다가 다시 앞을 보니 차창 밖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무런 흔들림이 없이 보닛 위에 앉아있는 여자는 머리를 땋고 분홍 댕기를 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투명하게 사라질 때 하비에르는 기면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생생했다. 그 꿈의 생생함은 하비에르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도록 하였다.

 

그게 정말 꿈이었는지는 몇 년 후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을 때도 확실하지 않았다. 백년 동안의 고독 작품 해설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을 때였다. 거기에서는 [집시들이 마콘도 마을에 가져온 '끓고 있는 얼음'처럼 일종의 모순 어법에 해당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은]-10P이라고 했는데 하비에르는 그게 과연 모순인가 생각해 보았다. '깨어있는 꿈'을 꾸었다. '자고 있는 깨어있음'의 상태를 겪었다. 그래 그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현실은 시시때때로 계속 모순과 마주치는 세계였다. 사람들은 모순을 원한다. 하비에르는 어느 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완벽한 다큐란 없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사람들은 연기를 시작한다. 반면 픽션은 또 다큐을 원한다. 픽션은 그럴듯한 현실을 그려야만 힘이 있다. 현실 그 자체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다.

 

하비에르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죽지 못했다. 그의 아내 헤일리아에게 죽겠다는 말을 못했기 때문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나는 이제 죽겠다고 말하겠다고 결심했지만 헤일리아의 모습이 보이면 그 결심은 또 흐지부지되었다. [집안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하비에르는 자기의 사랑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로 표현했다. 그는 멜뀌아데스가 준 양피지에, 변소의 벽이며 팔뚝에, 그 외 아무 곳에고 닥치는 대로 시를 썼고, 그 시 속에서 헤일리아의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났다. 오후의 졸린 듯한 하늘 같은 헤일리아, 장미의 달콤한 향기 속의 헤일리아, 물시계의 비밀과 같은 헤일리아, 아침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빵과 같은 헤일리아, 어디에나 헤일리아였고, 헤일리아는 영원 그것이었다.]-78p변용 하비에르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고독하게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사랑 그 자체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다.

 

사람들은 연애하면 눈에 콩깍지를 썼다. 그리고 으레 말했다. 결혼하고 콩깍지가 벗겨지면 사랑도 끝이라고. 사랑은 마술 같은 것이고 그 마술에서 깨어나면 사랑도 끝나는 것이라는 거겠지. 현실에 없는 꿈을 콩깍지에 새겨놓고 그것만 보면서 현실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정작 현실을 그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현실에서만 실천된다. 이상은 놀이일 뿐이다. 변치 않는 이상형이 있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때에 따라 이상형은 늘 변하게 마련이다. 어릴 때는 동화 속 왕자나 공주가 이상형이었다가 나이가 들면 스크린 속 배우가 이상형이 된다. 그러나 항상 내가 사랑하는 이는 현실의 상대들이다. 물론 연애대상도 바뀌긴 하지만 그 이유는 마술 같은 꿈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 때문이다. 그 현실의 문제를 대면하기 싫어서 이상형에 투사해버리는 것이다. 하비에르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다가 헤일리아를 떠올리며 다시 생각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인 사랑은 그 모순됨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준다.‘

 

연금술에 도취하여 밖으로 나오지 않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모험에서도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길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집은 떠난 아들을 찾기 위해 사라졌던 우르슬라, 즉 현실의 문제에 직접 행동한 사람이 길을 찾는다. 찾았다기보다는 보였다고 해야 하겠다. 현실과 마주침 속에 마술 같은 우연이 벌어지고 그곳에 길이 있다. 로또는 우연일지라도 일단 로또를 사야 하듯이 일단 걸어나가야 한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찾지 못했지만, 다시 우르슬라가 밖으로 나갔기에 길이 보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여러 사람에 의한 마주침의 연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하비에르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다가 또 생각했다. 역사는 곧 마술과 같은 우연들이 마주치는 리얼리즘의 시간.

 

제발 꿈이었으면 하는 것들은 늘 현실로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꿈같은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늘 그것은 이미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꿈이 저 높은 곳에 있고 거기서 내려오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꿈의 시체들이 쌓인 곳을 현실이 밟고 올라선다. 현실 아래에 꿈들이 있다.

 

마콘도도 그렇다. 시작은 죽음이 없는 이상적인 마을이었지만 죽음이 쌓이면서 현실로 올라선다. 이상적이라고는 하지만 죽지 않고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미치고 만다.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 시간의 시체들이 쌓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멜뀌아데스를 매장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결국 마콘도 역사상 첫 장례식은 멜뀌아데스를 위한 것이 된다. 그리고 레베카 부모의 뼈를 묻는다. 그리고 레메디오스가 죽는다.

 

하비에르는 백년 동안의 고독 속에 죽음이 쌓이는 동안 백 쪽의 책장을 넘겼다.

그는 죽어야겠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이 쌓일 것이기에. 그것이 '백년 동안의 고독'이며 또한 그것이 현실이니까.

 

[전쟁을 시작할 때가 되었어]-118p






책정보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0126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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