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그대 위의 푸른 나뭇가지들’을 읽고
달이 가득 차 있었다.
스마트 폰을 꺼냈다. 카메라를 터치, 사진을 찍었다. 하얀 동그라미가 뿌옇게 화면에 조그맣게 담겼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이 거슬렸다. 폰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다시 가던 길을 바라보았다. 변했다. 몇 년 사이에 동네의 거리가 더 밝아졌다.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가게도 이 골목에 서너 곳 되었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었고, 간판 앞에서 셀카를 찍은 사람들도 보였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줄까지 서서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가게의 파스타를 두 번 먹어보았다. 처음은 괜찮았지만 두 번째는 그저 그랬다. 걸어가다가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달력을 검색하니 음력 15일이었다. ‘보름달이 맞구나.’
지하철역 앞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스마트 폰을 꺼냈다. 지금 어느 역이에요? 메신저를 보내고 카페 건물 앞에 앉았다. 평일이었지만 사람이 많았다. 최근에 기찻길이 있던 자리에 큰 공원이 생기고 나서는 더 붐볐다. 잠깐 있다가 메신저 도착음이 들렸다. 화면을 옆으로 밀고 페이스북을 터치했다. 지구모양 알림 옆에 숫자가 들어가 있는 빨간 동그라미가 붙어있었다. 터치. '좋아요'를 누른 페친들이 보였다.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다가 아차 싶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12분 전에 '문래역 지났어요.' 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도 앱을 열었다. 문래역을 찍고 홍대입구역을 찍으니 9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이미 나왔어야 할 텐데 보지 못했다. '어디에요?' 다시 메시지를 보내고 공원을 따라 걸어가 볼까, 계속 기다려 볼까 하다가 공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앞에는 쓰레기가 가득했다.
언제 나왔어요?
난 아직 도착 안 한줄 알고 공원 따라 내려가고 있었지.
에~ 나 카페 옆에 앉아있었는데.
편의점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보았다.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하트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공원을 오가는 사람을 요리조리 피하며 걸어갔다. 공원에 나무들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 메모장에 옮겨두었던 이성복의 시를 열어 보았다. 문장들이 공원의 나무들 보다 띄엄띄엄 멀어보였다. 아차 싶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로 온 문자를 알리는‘1’이 메신저 앱 아이콘에 붙어 있었다. ‘나 출구 밖으로 나왔는데 어디야욤!? 나 여기 편의점 앞인디 :(’라는 읽지 않았던 문자가 있었다.
아 메시지를 보냈었네? 못 봤는데 그래도 만났네, 헤헤.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스마트폰에서 1은 사라졌지만, 둘 사이에는 1보다는 조금 더 큰 1.25 정도 되는 거리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서서 담배를 피며 위를 올려 보았다. 마당에 서있는 감나무는 언제 그렇게 자랐는지 잎이 무성했다.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두운 마당에서 보는 달이 길에서 보았던 것 보다 더 밝아 보였다.
스마트 폰을 꺼냈다.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보름달을 다시 찍었다. 나뭇가지에 달이 긴장감 있게 걸려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여러 차례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을 터치했다.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고‘1977’ 필터를 적용하니 사진은 더 분위기 있어 보였다. #연남동 #홍대 #SEOUL #나무 #마당 #보름 #달 #보름달 #FullMoon #밤하늘.
떠오르는 단어 앞에 #을 붙이고 공유하기를 눌렀다.
갈라터진 별들 대신 해시태그들이 달 아래 떴다.
침대에 누워 불을 끄자 방 안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옮겨둔 이성복의 시를 다시 떠올렸다.
갈라터진 별이라는 구절이 입 안을 헤매고 있었다.
다시 스마트 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올렸던 사진을 다시 터치하고 수정하기를 눌렀다.
그리고 #이성복 #시인 #시 #그대_위의_푸른_나뭇가지들 #시스타그램
이라고 해시태그를 추가했다. #시스타그램은 너무 억지 같아 다시 지우고 공유하기를 터치했다. 달 아래 더 많은 별들이 붙었다.
#이성복을 터치해보았다.
1,759 게시물이 있었다. 예쁘장한 컵 옆에 놓인 시집을 찍은 사진, 시집의 한 페이지를 찍은 무수히 많은 사진들이 가득 차올랐다.
어두운 침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나오는 빛만 그의 얼굴을 푸르스름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직 음력 15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