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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Feb 08. 2017

빨갱이가 어디 있다고?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을 읽고

"아시아에서 '빨갱이 사냥'에 가장 신경질적인 지역을 꼽는다면 중근동과 지난날의 한국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중반, 몇 개월간 한국을 여행했다."

 -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p.43-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에세이 '여행의 순간들'을 보면 70년대 중반 한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목포를 여행하는 내내 감시당하고 경찰에게 심문을 당했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마지막에는 혐의가 풀린 후 경찰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고 경찰이 보여준 수첩에는 적군파 멤버의 얼굴 사진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흥미가 돋는다면 나름북스 출판,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홍상현 옮김,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책의 시작에 저자는 무려 16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으로 한국의 독자를 위한 글을 실었는데, 부제가 '일본에서의 마르크스 수용 역사'이다. 독자에게 쓰는 글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부당한 평가의 근원부터 시작해서 한국과 일본에 마르크스의 학문이 들어오게 된 배경과 국제 정세 등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마르크스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한 그의 사상을 따라갈 수 있으며 그 길은 "내가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 사회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끝내는 나의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는" (32p) 것과 명확하게 연결할 수 있다. 본문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 읽은 후, 입문서로서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쭉 읽으면 된다.


책의 뒷부분에는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방법도 친절하게 소개한다.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부법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말미에는 저자와 지도 학생의 학습회 풍경을 '체험판'으로 실어놓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으로 입문하고, 소개한 공부법으로 읽고 공부하고, 마지막엔 함께 학습하는, 딱딱 실질적인 공부에 적용할 수 있도록 책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마르크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이기도 하고, 그동안 이래저래 잘못 알려진 마르크스가 아니라 '정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라고 소개해주는 저자이기도 하겠다.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게 되는 첫 만남의 기회를 이 책을 통해서 잡았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시절 형은 독서토론회 동아리 연합회장이었는데, 형을 따라 운동권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조그마한 서점에 간 적이 있다. 그 서점에서 형이 무슨 책을 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그래, 국민학교다. 쿨룩)에서 '똘이장군'을 보고 반공 만화를 사봐야 했던 나에게 서점에 당당히 꽂혀 있던 비봉출판사의 '자본론'의 위엄은 어렴풋이나마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반공교육을 받지 않은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비슷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이제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 마르크스를 만나자. 여행에서 후지와라 신야처럼 '빨갱이 사냥'의 고초를 겪어야 했던 시절은 이제 아니지 않은가. 아니라고 확언하기에 석연치 않은 심정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더욱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게다가 두려워하기엔 김보통작가가 그린 표지의 마르크스가 너무 귀엽단 말이다. 흐흐흐.

귀여운 마르크스에게 인사.


"안녕하세요!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반가워요."



책정보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6036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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