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닮은 집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망원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전월세로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으로 들어간 후 6년간 살았으니 꽤 오래 산 편이었다. 그중에 일 년은 여행으로 비어 있었다. 6년이니까 두 번의 재계약 기간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집주인이 계약 날짜가 지나고 나서야 전세를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에 자동 연장이 되어서 올려주지 않았고, 두 번째에는 보증금은 그대로인 대신 월세를 달라고 해서 2년간 전월세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6년을 사는 동안 망원동의 시세 또한 그만큼 올라가 있었다. 결국 우리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월세를 더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우리는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집을 구하러 다니는 건 나보다 아내 현정이가 더 고생을 많이 했다. 주말이나 되어야 시간이 날 텐데 그 주말에도 난 출근하고 심지어 야근까지 해야 될 때가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시기가 아니었을 때가 거의 없는 생활이었지만.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따로 또는 같이 이곳저곳 부동산을 전전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집과 경제적 조건에 부합되는 곳을 찾는 것은 예상했던 바대로 쉽지 않았다. 결국 이 동네를 벗어나 더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는 건가...... 익숙한 골목, 단골이 된 국밥집과 망원시장의 가게들, 아! 족발은 이제 어디서 사 먹지? 항상 밝은 목소리로 주문을 받으시던 동네 피자가게 아저씨의 얼굴을 뒤로한 채, 서글픈 마음으로 더 멀리, 더 멀리 있는 부동산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망원동에 살 때 현정이가 산책을 갔다가 도로 한가운데 나무들이 줄 서 있어서 예쁜 길을 보았다며 그런 곳에 살면 좋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연남동이라고 했다. 나중에 같이 가 보자고 해서 그 길을 함께 가 보았지만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쌀쌀한 계절이었던 탓에 난 현정이가 느꼈던 그 감흥은 받지는 못했었다. 그 길이 마을 시장 '따뜻한 남쪽'이 열리는 길공원길이었다. 그 후 서글픈 마음으로 더 멀리, 더 멀리 있는 부동산을 찾아다니고 있던 때에 현정이는 마침 연남동에 살고 있는, 여행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그곳에 있는 부동산을 한번 더 둘러본다고 했다. 이미 연남동에 있는 집을 찾아본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출근했던 날이라 같이 가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 집을 현정이가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현정이는 내게 전화를 해서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무도 있어." 오래된 단독주택인데 마당이 있고, 마당에 나무도 있는 집을 발견했다며 사진을 찍어 메시지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넓지는 않은 마당은 낡은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시멘트에 하얀 페인트로 마감한 벽 한쪽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다. 거기에 벽보다 높은 나무가 대문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현정이는 단독주택에 살아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단독주택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도 단독주택을 찾아봤지만 매매로는 있어도 전세로 나와 있는 단독주택은 찾기가 힘들었다. 있다고 해도 너무 비싸거나 아니면 너무 오래되고 낡은 집들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 기분은 홍대 거리에서 쇼핑을 하면서 "마땅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게다가 왜 이렇게 비싸." 그러다가 놀이터 플리마켓에 갔더니 소박하지만 완전 내 스타일인 아이템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겠다 싶었다. 물론 이 집도 30년이 다 되어가는 단층집이다. 옛날 드라마에서 나오는 회장님 댁 같은 2층 주택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러나 화려한 홈 드레스를 입은 사모님이 클래식한 전화 수화기를 들며 "네~ ㅇㅇ동입니다~."라며 정리한 손톱을 내리깐 눈으로 스치듯 보는, 그런 집을 우리가 찾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만족할 만한 집을 찾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당이 있다. 나무도 있다. 서울 한 복판에서 평범한 부부가 마당이 있는 집 한 채를 온전히 다 쓸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친구를 동네 친구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집이 아닌가. 며칠 후 현정이와 함께 나도 집을 보러 갔다. 겨울엔 춥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지금 나는 난방 텐트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대략 만족스러웠다. 나무가 있고 흙이 있다는 건 어떤 깨끗한 원룸의 옵션보다 우리에겐 더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 방은 샤워실과 붙어 있으니까 옷방으로 쓰고 저기는 거실로 여기에 침대를 놓을까? 싱크대 문짝은 색깔을 바꿔야겠지? 이렇게 새로운 우리 보금자리를 그려보면서 마당이 있는 이 집에 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마당에 있는 나무는 감나무였다. 마당이 있는 이 집에 살게 되면서 소소하지만 삶에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일단 이 집의 프로필부터 읊어볼까 한다. 연남동과 성산동의 경계선 가까이에 있는 이 집은 작은 골목길 끄트머리에 있다. 집주인도 이 집에서 이십여 년간 살았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연남동 토박이다. 이 집에서 살다가 바로 동네 이웃의 양옥집으로 이사를 가셨고, 이 집은 세를 놓았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세 식구가 한 집에 살았다고 한다. 한지붕 세 가족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아주 큰 집은 아니다. 작은 방들이 여러 개 있다. 원래는 기역자 형태의 집이었던 걸로 보인다. 그러다가 대문 가까이에 별채 방을 하나 더 지어서 좁다란 외부공간이 있는 디귿자 집이 되었다.
대문을 들어오면 감나무와 함께 마당이 있다. 감나무보다 더 큰 목련나무가 있었는데 마당을 다 덮어버리는 꽃과 낙엽이 관리가 되지 않고, 마당에 햇볕도 들지 않아서 가지를 모두 베어버리고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죽어있는 한아름 나무 둥치만 남아있다. 마당을 지나면 디귿의 가운데 빈 공간이 되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인 외부공간이 있고 그곳을 에워싸고 방들이 있다.
방은 모두 주방을 포함해서 6개라고 할 수 있겠다. 제일 큰 방과 침실로 쓰는 방 사이에 마루가 있지만 마루라고 하기엔 쑥스러울 정도로 작다. 이케아 소파와 흔들의자를 놔두었는데 가장 활용을 잘 못하고 있는 공간이다. 여름에는 문을 열어놓고 흔들의자에 몸을 뉘이고 책을 보곤 한다. 거기서 가장 먼 마당 구석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화장실도 따로 지어진 한 칸인데 예전에는 샤워실로 함께 썼는지 오래된 욕조가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너무 오래돼서 쓰지 않고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시 한번 공간을 시계방향으로 나열하자면 화장실, 샤워실, 옷방, 주방, 큰방, 마루, 침실, 별채 방이 지붕이 덮인 외부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다. 두 명이 쓰기에는 꽤 방이 많지만 크지가 않다. 심지어 이사를 온 첫날 옷방의 천장이 낮아 예전에 쓰던 장롱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이삿짐센터 아저씨께 바로 기부하게 되었다. 들어오는 순간 가장 큰 가구를 버리게 한 집이다. 거기에 약간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오자마자 나누게 한 집인 것이다. 이 집에서 우리는 주로 주방과 연결되어 있는 큰 방에서 생활을 한다. 화장실을 가려면 비를 약간 맞아야 하고 겨울에는 추워서 윗도리를 입고 나가야 한다. 별채 방으로 갈 때도 신을 신었다가 벗었다가 해야 한다.
오래되었고 불편할 수도 있는 집이지만 조금씩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덧붙여 가며 살고 있어서 그러한 작업을 통한 잔 재미도 느끼게 하는 집이다. 마당에는 공벌레가 보이고 오이를 심어서 덩굴이 자라는 것을 보고, 늦가을에는 주인아저씨와 감을 수확해서 나눠먹는 집.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집,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게 하는 집. 그런 집에서 나는 현정이와 함께 이 2년 동안 살고 있고 앞으로 적어도 2년은 더 살 것이다.
여기까지 내려오니까 마당이 있는 집에서 여행 찾기라더니 시시콜콜 집 이야기만 하고 도대체 여행은 어디에 있나 싶기도 하겠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여행에 관한 기억과 생각들이 더 자주 났던 것 같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어떻게 보면 더 불편해졌다고도 할 수 있을 이 집에서의 일상이 배낭여행을 하던 시간들 속 일상과 더 닮아있는 것이었다. 조금은 불편하더라고 짐을 줄이려는 마음. 나무를 보고, 햇살이 비추는 곳이 움직여 가는 걸 가만히 본다거나 하는 하릴없는 시간. 추우면 보일러를 더 가동하기보단 옷을 하나 더 껴입게 되는 환경에 패시브한 태도. 이런 소소하지만 이 전의 집에서는 놓쳤던 것들이 이 집에서 살게 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것들이 다른 인생의 시간보다 훨씬 강하게 남아 있는 일 년, 팍팍한 오늘의 생존에 치여 고개를 숙인 채 웅크리고 있던 그 여행의 시간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지금 여기'라는 문턱을 넘어오도록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그 여행에게 마당이 있는 집에서의 일상이 소환장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소환장은 마당에 부는 바람으로, 피곤한 몸을 문에서 던지면 바로 침대에 쓰러질 수 있는 작은 침실로,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로. 이 집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소환장이 내 여행기가 될 것이다.
이 집에서 나를 가볍게 만드는 잉여의 시간들과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이 흐트러진 여행의 편린들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내가 이 집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누군가는 '집에 들어앉아 해묵은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정신승리나 바라는 건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살면서 진정 정신이 승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한 발 더 나가서 물어본다. 먹고사니즘의 변명으로서 정신 승리가 아닌 오롯이 나만의 정신에게 손을 들어주는 그런 시간이나, 물건이나, 혹은 실천들이 있었던가 반추해보는 것이다. 거기에 여행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을 만나고 싶다. 직장이 아닌 내 집에서 만큼은 난 잉여롭고 싶다. 그리고 그 잉여로 내 집에게 말을 걸고 싶다. 집은 여행으로 대답을 할 수도, 다른 무언가로 다시 내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