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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14. 2017

 식탐 찬미

여행 속의 맛





나의 아내여.

유약한 목덜미가 유난히 창백해 보입니다.

저 가녀린 목덜미로 우락부락한 히말라야를 삼칠일 동안

버티며 걸었군요.

지구가 시커먼 속살을 뒤집고 뒤집어 만들어낸

가장 높고 거대한 히말라야.

그 산의 무리까지 집어삼키는 하양은

당신의 하양이 아닙니다.

백귀白鬼의 장막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땅에 붙어 떨고 있는 눈꽃의 하양.

그 어느 거목보다 더 치열하게

하양에 하양으로 버티어 살아내는

그것이 바로 나의 아내 당신의 백白입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 포카라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숙소에 들어서자 아내가 트레킹 내내 통증으로 괴로워하던 어깨를 침대에 파묻은 채 엎드리고 있는 게 보였다. 침대라는 가구를 하얀 흙으로 빚는다면 거기에 으레 장식으로 있어야 할 바로크의 나선 주름처럼, 한꺼번에 빚어낸 반투명한 젖빛 대리석 조각처럼 하얀 침대와 아내는 혼연일체가 되어있었다. 어디가 아내고 어디가 침대인지 구겨진 홑이불을 걷어냈다. 아내의 창백한 어깨가 보였다. 혹시라도 바스러져 하얀 모래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난 조심스럽게 아내의 어깨를 살며시 쥐었다.


어깨 또 아파요?


대답이 없다.


자요?


반응이 없지만 자는 것은 아니다.


‘또 자는 척 장난을 치고 있나?’


살며시 쥔 어깨를 당겼다.

벽과 침대가 만나는 구석을 메우듯 벽을 보고 엎드려 있던 아내를 바로 눕게 했다.     

 

뭐해요?


침대에서 발굴된 아내는 눈을 감은 채 혀를 내밀고 있었고 그 위에는 빨갛게 윤기가 흐르는 뭔가가 얹혀 있었다. 그리고 양 손을 가슴 한가운데 다소곳이 모은 채 10cm가량 되는 조그마한 튜브를 꼬옥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몇 초간의 일시 정지. 쩜쩜쩜.     


어허~ 내가 맨입으로 그렇게 먹지 마라 그랬잖아. 빈속에 매운 것 먹으면 배 아프다고!

 

아내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혀를 쏙 넣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혀가 들어간 입에선 짭짭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도 먹어보자!


마구마구 키스를 했다.        

       



우리는 음식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내는 먹는 것을 탐하는 편이 아지만, 나는 식탐도 있고 또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성이었다. 심지어 아내가 ‘오빠는 미각이 없는 것 아냐?’라고 할 정도로 뭐든 심하게 잘 먹는 편이었다. 음식에 대한 성향이 둘은 이렇게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특정한 음식이나 맛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기 여행을 떠나면서 한국 음식을 많이 준비하지도 않았다. ‘자고로 여행을 가선 그 현지 음식들을 먹어줘야 진정한 여행자가 아니겠어.’라는 약간 자만이 섞인 마음과 함께 고추장 튜브 달랑 세 개만 배낭에 넣었다. 그러나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음식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라오스 방비엥에서는 새콤달콤한 닭꼬치 구이를 자주 먹었다. 한식의 맛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면 명동거리에서 파는 꼬치구이와 맛이 거의 비슷했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방콕에서 바야흐로 한국 음식 먹방은 시작되었다. 떡볶이와 김치찌개를 먹었다. 아플 땐 고향 음식이 최고라며 스스로 변호했다.


시큼한 맛에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국을 먹었던 미얀마에서 고추장 튜브 1호는 이미 날아갔다. 인레에서 만난, 한국에서 일하는 영국인에게 2호를 선물로 준 걸 내심 아쉬워했다.


트레킹의 피곤함으로 점철된 네팔 안나푸르나에서 라면과 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홍삼보다 좋았다. 한국인 등산객을 만나 깻잎을 얻어먹었을 때는 또 얼마나 감동을 했던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먹은 항아리 케밥은 고기 김치찌개라고 자신을 세뇌하며 먹었다.

 

이란의 야즈드에서 낙타고기 스테이크를 먹었을 땐 팍팍한 고기에 김치보쌈을 떠올리며 먹었고,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는 급기야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한인 슈퍼를 찾아가 재료를 사 왔다. 크리스마스에는 현지인 친구의 가족들에게 산적과 미역국을 대접했다. 미역국이 맛있다고 큰 숟가락으로 떠먹고는 빵으로 접시를 닦아서 하몽과 함께 잘 먹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

           

여행 중 한 번씩 일기장에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 베스트 10을 정하곤 했다. 열 개로는 모자라 리스트는 계속 늘어났다. 그림도 그렸다. 족발 '중'자 메뉴를 그리기 시작하자 다른 음식들도 노트가 밥상인 마냥 하나씩 차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디저트로 먹을 아이스크림으로 그림을 마무리했다. 머릿속에 망원 시장을 그리며 먹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기서 일단 닭강정 먹고 , 저기에서 삼치 한 마리 사고 모퉁이에서 족발을 산 다음에 과일 사고, 아! 슈퍼마켓에서 소주 한 병 사가야지.


오빠 어묵이랑 떡볶이도 먹어 줘야지.


아, 그래. 섭섭할 뻔했네. 그럼 순대도 조금만 먹을까? 흑, 배고파진다.


앞으로의 여행에서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나는 아내의 고추장 튜브 조금 핥은 것을 타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있어?

 

응, 맛있어.


매콤 달콤한 입맞춤 후 아내는 애교 섞인 투정으로 말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놈의 고추장 튜브가요. 자꾸 자꾸만 나도 모르게 손에 들려있어요. 혀로 핥으면 그게 그렇게나 맛있단 말야.

   

그래요. 먹자. 먹자. 즐겁자고 하는 여행인데 까짓거 먹고 싶은 건 먹으면서 다니자. 까짓거 여행인데!

  

아내를 꽉 껴안으며 소리쳤다. 바로 한인 식당에 가서 삼겹살과 낮술 한 잔 할 기세였다. 우린 이미 그 식당의 단골손님이라 할 만했다. 코끝에 한식 메뉴를 떠올리자 벌써 귀밑샘이 얼얼했다. 눈 앞에는 싱긋 웃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부족한 것도 많은 여행이지만, 그렇게 가까이 늘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충만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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