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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15. 2017

동네 공원을 거닐며

경의선 숲길 공원



아내는 일하러 나간다.

출근 없는 자유로운 일상을 획득한 후로는 아침에 버스정류장까지 아내와 함께 간다.

눈으로 따라가던 버스 안 아내의 실루엣이 사라지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린다. 정류장 옆 경의선을 달리는 열차 소리에 얇은 아쉬움을 떨치고 어깨를 한 번 편다. 집으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가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집에 가면 잠이나 잘 뿐. 철길 아래 지하보도로 향한다. 철길을 통과하면 경의선 숲길 공원. 산책의 출발점이다.     





평일 오전의 동네. 출근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 동네는 한산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이 풍경을 볼 일이 없었다. 한동안은 낯선 시간을 살게 된다. 그 시간이 축적되면 어느새 일상의 새로운 패턴이 생긴다. 아내와 헤어진 후 시작하는 동네 산책도 그중 하나였다.


경의선 숲길 공원의 출발점은 연남동과 연희동, 성산동, 남가좌동이 만나는 지점이다. 홍제천 위에 도로, 도로 위에 철길, 철길 위에 다시 도로가 입체적으로 얽혀있다. 가좌역을 떠난 철길은 공원으로 변신하여 홍대입구역까지 연남동의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철길이었던 공원은 성미산로와 동교로와 교차하여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공원의 시작에는 경의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제 더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 폐선은 고가차도의 육중한 다리 밑에서 철망 울타리를 경계로 공원 보행로로 바뀐다. 그 옆에 널따란 평상이 있다. 주로 노인들이 바람을 쐬거나 장기를 두며 삼삼오오 모이는 곳이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장기를 겨룰 상대는 아직 나오지 않았나 보다. 어디를 향하지도 않는 시선과 무표정한 얼굴이 폐선을 받치고 있는 교각처럼 그 시간의 공허감을 지탱하고 있다. 노인은 새벽잠이 없어 일찍 일어났다가 아침부터 툴툴거리는 할멈의 잔소리를 피하여 일찌감치 집을 나섰을지도 모른다. 



한 번씩 가좌역으로 오가는 열차들이 굉음을 낸다. 고가차도의 그림자를 벗어나 철길 옆 보행로를 걸어 내려오면 연서 지하보도의 입구가 나타난다. 본격적으로 공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곳에는 인공 실개천이 시작되는 수공간이 있다. 과거에 홍제천 옆을 흐르던 실개천을 모티브로 하여 조성한 것이다. 경의선에서 나오는 지하용수를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그곳에 발을 담그거나 물놀이를 하지만 난 그렇게 천진난만하지 못하고 의심이 많아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유모차에 기댄 젊은 노인이 공원에 있다. 유모차는 비밀로 된 투명막으로 덮여있다. 아이의 부모도 나만큼이나 의심이 많은가 보다. 아니 공기가 깨끗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이미 보통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부모의 부모인 노인은 손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기야 하겠지만, 그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피곤해 보인다. 아침 시간을 자식의 출근 뒷바라지로 전쟁같이 보내고, 곧 자식의 자식을 맡아 답답해진 가슴을 털어내고자 공원으로 나섰을 테다. 손자 얼굴이라도 보면서 놀고 싶지만, 꼭 유모차의 가림막을 해야 한다는 자식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맴돈다. 그런데도 자식에게 더 많이 해주지 못해 미안한 심정을 손자와 함께 유모차에 싣고 걷다가, 어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말 틀린 게 없다고 한숨을 뱉으니, 무릎에서도 숨이 빠지는지 시큰하여 잠시 멈춰 섰던 것이다. 게다가 빌어먹을 영감은 아침부터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평생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원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이 벤치에 앉을 때까지 그 모습을 보고 이런저런 공상을 즐기던 나는 인공 냇물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좁은 냇물 건너에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공원은 2015년 여름 개장하였지만, 그 이전부터 은행나무들은 옆에 있는 15층 아파트의 반쯤은 너끈히 가리는 높이로 서 있었다. 공원이 만들어지기 전 이곳을 산책할 때면, 황량하게 비어있는 경의선 폐선 부지를 조용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그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높은 키가 위압적이기보다 든든함을 느끼게 했다. 가을에는 넓은 땅을 온통 노란 잎으로 덮어 인공적인 조경을 무색하게 만드는 풍경을 선사하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잎이 이 땅을 덮어왔을까. 공원이 개장되고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커다란 은행나무가 주는 충만함을 따라가기엔 아직 얇은 홑이불과 같은 시간을 지냈을 뿐이다. 공원이 개방되고 처음 산책했던 날은 공사 가림막 이편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은행나무에게 다가가 천천히 걸었다. 깊게 주름진 나무껍질의 촉감이 따뜻했고 높이 올려다보이는 굵은 가지들이 반가웠다.

      

홍대입구역과 가까워질수록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연남 파출소 앞까지는 아직 한산하다. 그 대신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말에 공원에 나오면 개를 키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개들이 많다. 오죽하면 연남 파출소가 있는 동교로를 중심으로 홍대입구역 쪽은 술판이고 그 반대편은 개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평일 오전에는 뜻밖에 젊은 사람들이 반려견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제법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공원에 있다는 것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러는 나는 쓸쓸한 존재인가 반문을 해본다. 별 걱정을 다...... 생각을 떨치고 다시 공원을 걷는다. 젊은 사람들이 트렌디한 패션으로 늠름하거나 귀여운 반려견을 앞세우고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에 정말 여기가 영화에서 보았던 뉴욕의 센트럴 파크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경의선 숲길 공원을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비슷하다고 하여 연트럴 파크라고 많이 부른다. 하지만 공원의 규모나 형태를 보면 센트럴 파크와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경의선 숲길 공원은 철도용지에 조성된 선형 공원이지만 센트럴 파크는 이름 그대로 뉴욕의 가운데에 있는 광장과 같은 공원이다. 공원 이전에 철길이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과 더 유사하다. 어쨌든 센트럴 파크든 하이라인이든 그것과 유사한 점으로 이 공원의 성격을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 사는 사람과 문화에 따라서 연트럴 파크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는 계속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방향이다.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의 터가 되는 공원이 될 것인지, 역세권과 더불어 녹세권이라는 말로 오로지 부동산의 금전적인 가치에만 기여하는 공원이 될 것인지.

      

한 사람이 개를 산책시키고 있다. 그런데 산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훈련되어있지 않은 개다. 그보다 개가 동행자를 무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은 끈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익숙하지 않아 보였고 깨끗한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는 복장도 산책을 위한 복장이 아니었다. 개 주인이 아닌 것 같았다. 개는 자기 마음대로 공원을 누볐고 사람의 얼굴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평일 오전에 왜 자기 개도 아닌 개와 함께 저런 옷차림으로 공원에 나와 있는 것일까. 누군가 억지로 시킨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인이 누굴까. 누가 개일까. 주인을 개돼지처럼 무시하는 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가 끈을 쥐어야 할까. 방향은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상념이 의식의 흐름대로 공상을 키워나갔고, 산책 중인 개의 짧은 꼬리는 심히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지, 꼬리가 개를 흔드는지.     


동교로를 건넌다. 홍대입구역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구간에 왔다. 공원의 양옆으로 상점들이 즐비하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이라면 사람이 많아서 나의 성정으로는 오래 있기 싫은 곳이지만, (술판이 되는 시간이다.) 평일 오전만큼은 괜찮다. 공원을 걸으며 주변 건물들을 보았다. 공사 중인 곳이 많다. 공원의 완공이 가까워질수록 공사 중인 건물은 더 많아졌다. 날씨가 좋은 저녁이면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공원 바로 옆에 있는 가게들도 손님들이 많지만, 장사가 정말 잘 되는 곳은 편의점인 것 같다. 너도나도 돗자리를 깔고 편의점에서 사 들고 온 술을 마신다. 돗자리가 없는 사람은 벤치에서 마신다. 공원 가까이에는 맥주와 간단하게 테이크 아웃해서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파는 가게가 이곳저곳에서 생겼다. 하지만 공원과 좀 떨어진 가게들은 공원에게 손님을 빼앗긴 형국이다. 지붕이 없고 대신 나무와 잔디로 꾸며진 거대한 쇼핑몰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은 거대 자본의 프랜차이즈보다 자영업자가 꾸리는 가게가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권리금 장사를 위해 소위 뜨는 이곳으로 가게를 얻어온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은 자신들의 개성을 살리려는 가게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장사가 잘되는 메뉴만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긴다면 먹자 공원이 돼버릴 것이다. 연트럴 파크가 스테이크 파크가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여느 핫플레이스가 겪는 절차를 똑같이 밟으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잠식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 버린 후 단물 빠진 공원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그 어느 번화한 곳 보다 빨리 변하고 있는 곳이 여기, 연남동이다.

 

시끄러워질 것이다. 더 비싸질 것이다. 도로 곳곳에 커다란 풍선 간판이 꿀렁꿀렁 거리며 서있을지도 모른다. 공원에 판촉을 위한 선간판을 든 사람이 등장한다면 정말 싫어질 것 같다. 인사동에 가면 제일 보기 싫은 것이 그런 인간 말뚝 간판이다. 더우나 추우나 길 한복판에서 큼지막한 호객용 간판을 들고 있는 사람도 힘들어 보이고, 그렇게까지 내세워야만 장사가 되는 과잉 경쟁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미디어의 덕을 보고 맛집이 되어서는 손님에 치여 맛을 잃어버리고 친절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게가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가기에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고, 이 동네만의 오랜 단골 옆 동네 공원이 될 수는 없을까. 산책의 시작에 있었던 커다란 은행나무처럼 시간의 주름이 깊게 새겨진 공원을 거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연남동에서 살 수 있을까? 2년마다 불안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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