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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16. 2017

모든 길은 끝이 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아! 코 고는 새끼들 죽여 버리고 싶다.

    

오빠도 코 많이 골아.


나도 코를 많이 곤다는 걸 나중에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누군가도 한 밤 중에 코 고는 나를 증오했겠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온종일 걷다 보니 일단 몸이 피곤하다. 그래서 잠을 못 자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 중에는 수백 개의 침대가 있는 곳도 있다. 그러면 수백 개의 곱절이 되는 콧구멍이 있는 것이다. 그중에 시끄러운 구멍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길을 처음 걸었던 성 야고보는 다른 사람의 코골이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겠지? 시절이 좋아 순례도 아니다, 편한 여행이나 다름없다고도 하지만, 과거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참기 힘든 고역으로 생겨났을 테니 시대를 불문하고 고통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뻬레그리노로 가득 찬 알베르게에서는 남이 코 고는 소리를 내기 전에 자신이 먼저 깊은 잠으로 빠져드는 게 상책이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친 탓에 아침이 무겁다. 발을 꾸역꾸역 등산화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이제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보다 길다. 하지만 어떻게 끝날 것이라고 예상되지 않는다. 산티아고 꼼뽀스뗄라의 대성당 앞에서 난 어떤 모습일까. 

                

길을 걷는다. 

시월에서 십일월로 넘어오고

갈리시아 지방으로 접어들수록 공기는 젖은 숨을 뱉어놓았다.

대지는 그 숨으로 안개 이불을 덮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대지의 스케일이 달라서 적응이 안될 때가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끝없는 이란의 황무지 사막,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기 힘든 히말라야의 산들. 산티아고로 가는 길 옆으로 펼쳐진 벌판도 마찬가지였다. 이 올리브 나무들은 어디서 끝이 날까? 끝날 것 같지 않은 순례길을 온갖 상념과 함께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또 하루 머무를 마을이 나타나곤 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끼어서 더욱 거리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내 몸을 중심으로 반경 2미터밖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였다. 구름 안에 있으면 그런 상태일까? 솜사탕 속에 박혀있는 별사탕이 이런 기분일까? 말 그대로 눈 앞이 막막했다. 이럴 땐 안으로 살피는 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경치를 구경할 수 없으니 내 몸을 구경하는 것이다. 한 발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에 집중한다. 돌을 밟았을 때와 수풀을 밟았을 때, 마른 흙을 밟았을 때와 젖은 흙을 밟았을 때. 각각 다른 느낌에 집중해 본다. 종아리 근육이 팽팽해지는 것을 보고, 허벅지에서 허리로 올라가는 통증.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의식한다. 

                 

흡흡. 호호. 두 번씩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세어볼 때쯤 다시 잡념이 떠오른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괜한 상념으로 변한다. '안 보이는구나. 눈 앞도, 미래도. 까미노를 다 걷고 나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여행경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거다. 여행 동안 알게 된 유럽 친구들, 자기 나라에 오면 자신의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말한 친구들 중 여건이 맞는 친구가 없다면 스페인에서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얼 먹고살아야 하나. 몸 밖을 둘러싸고 있던 자욱한 안개가 가슴속으로 들어와 막막함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아, 앞으로 내 여행은 어떻게 계속될까?

          

발걸음을 가로막는 차도가 나타난다.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가던 시선을 엉겁결에 밖으로 돌리게 되었다. 앞으로 고개를 드니, 창이라곤 하나 없는 육중한 곡물창고가 난 데 없이 나타났다. 안갯속에 갇혀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던 작은 육신이, 바로 앞에 맞닥뜨린 커다란 물체 앞에서 순간 움찔하게 되었다. 슬금슬금 흘러가는 안갯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건물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조그만 두 발 짐승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 짐승은 밑에서 창고를 올려다본다. 얼마나 높은 걸까? 나는 얼마나 작은가? 얼마나 큰 걸까? 저 큰 덩어리를 감싸는 이 안개는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상념이라는 망토까지 걸친 안개는 마치 영화에서나 보았던 거대한 괴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괴물은 축축한 몸뚱이로 초라한 여행자의 길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안개 속에서 나의 앞길을 막고 있는 그 괴물과 그림자는 마치 내가 걸으면서 빠져들었던 상념에서 등장한 슬픔과 우울의 반죽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여기서는 걱정이 점액처럼 뚝뚝 길 위에 떨어지고, 저기서는 불안과 공허함이 길 위에 싱크홀을 뚫어놓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내리고 앞을 보았다. 여전히 안갯속의 길은 멀리 보이지 않는다. 앞에 걷고 있는 아내와 길 위에서 만난 친구가 보인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뜬다. 그렇다.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현실은 그 이상을 머금고 있다.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이 여행이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언젠가는 이 여행도 끝날 것이고 언젠가는 나도 죽겠지. 


죽으면 끝. 


이 길이 끝난 후, 이 생이 끝난 후의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이 순간 이 길 위에 또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지금, 현실의 힘으로 거대한 괴물의 가랑이 사이를 묵묵히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쓸데없는 생각을 하였다.  

다시 안개와 함께 상념을 밀어내며, 어깨와 무릎에 힘을 빼고 내 다리가 움직이는대로 따라갔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 코를 골겠지만 지금 걷고 있는 내게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다.

그러니까 지금은 걷자.


죽으면 끝이니까 지금은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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