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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10. 2017

몸도 마음도 방랑 방랑

불안한 나를 어찌할까?

버리기.

오랫동안 갖고 있었지만, 쓰지 않던 물건들을 버렸다. 옷을 정리해서 3단 서랍장을 하나 비워냈다. 비운 그 서랍장도 버렸다. 작은 마루에 있다가 옷방에 옮겨져 있던 소파는 빨랫감만 받아먹고선 쓸데없이 푹신함을 더하고 있었다. 아내가 지인들의 단톡 방에 올려서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다. 책을 80권가량 인터넷 서점에 팔았고 200권 정도 버렸다. 책장으로 쓰던 수납 상자도 서너 개 비울 수 있었다. 버릴 책을 묶어서 대문 앞에 내놓고 있으니 동네 할머니가 슬슬 살피면서 다가왔다.  

   

이거 다 재활용 버리는 거여?

네, 가져가셔도 돼요. 그런데 이게 무거워서…….

그랴? 괜찮어. 놔둬.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께.    

 

급하게 어딜 가시더니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할머니와 함께 다시 오셨다.     


그 짝에꺼 먼저 가져와 아니 그거 말고.

여기 먼저 실어야지.

어따 여기? 그건 여기가 나아.     


두 분이 만담 하시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대문 앞이 말끔해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책장을 보았다. 그렇게 많이 버렸는데도 책장의 밀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책장이 감당할 책의 양이 이 정도인데 지금까지 그 이상을 꽂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그 많은 책이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걸까. 쟁여놓기를 위한 약 4.5차원의 공간이 접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늘 적게 소비하는 생활을 추구했지만 그런데도 미련이 많은 물건이 나도 모르게 삶 속에 들러붙어 있었나 보다. 좀 허탈해졌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그랬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소진 증후군을 겪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스스로 강한 척하며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을 못 본척하면서 힘겨운 하루를 반복하였다. 밤낮없이 일할수록 누군가 날 파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예민하고 소심했고 겁이 많았다. 불만을 표현하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 직장에선 말도 별로 없었다. 힘들 때마다 여행을 떠올렸지만 그래 봤자 먹기 싫은 요리에 소스를 좀 발라서 꾸역꾸역 삼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이 그딴 감미료로밖에 쓰이지 않는다는 것도 싫었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라고 할 만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체감했기 때문에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 그 후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내가 했던 여행을 새로운 어떤 것으로 만들어 보고자 궁리했다. 간간이 돈이 필요하였기에 아르바이트로 다시 건축 일도 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제법 긴 시간을 잘 버텼다. 경제적으로만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내 앞에 던져졌다. 돈이 궁해질 때나 애먼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초조했다. 뚜렷이 보이는 것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허탈함이 자리를 잡는다.


겨울은 춥다.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아내는 열심히 일을 만들어 가는 중인데, 추운 날씨에 일도 뜸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되고 불안했다. 직장을 구하고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는 생활로 다시 들어서야 할까. 그 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 한 것 같아서 서글펐다.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려 한 것도 실패한 것 같은 열패감이 느껴진다. 저것도 이것도 다 실패다. 그동안 난 대체 뭘 한 걸까. 혼자 있을 때면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냥 돈 벌려고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돈 벌고 또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고 생각해보지만 ……. 왜? 왜? 왜 그렇게밖에 못 사는 걸까? 글쓰기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것보다 이력서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무서웠다. 자기모멸은 놀이공원의 수직낙하 놀이기구처럼 자극적이었다. 망상은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기에 십상이었다.

     

‘뭘 하고 싶은지, 잘하는 게 뭔지 알기는 아는 걸까? 안다고 해도 게을러터져서 뭘 하지도 안잖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돈도 못 버는 게 처먹기는 엄청 처먹어요. 배고픈 내가 가증스럽다.’    

 

나는 연못 옆에 앉아 일렁이는 물결에 비쳐 일그러진 내 얼굴만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슬픔은 나를 향해있었고, 자신이 쓸모없이 느껴졌다.

    


나 요즘 좀 그래…….

뭐가요?

뭔가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왜요? 왜 그런 것 같아요?

그냥 돈도 떨어지고 그런데 난 돈도 안 벌고 그렇다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나 때문에 괜히 네가 더 고생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지고 그럼 뭔가 해야 할 텐데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지고…….

    

아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돈도 못 벌고 이루어 놓은 게 없다고 자책하는 건 아무 쓸모없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꼬박꼬박 월급 받아서 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선택한 건데 그런 자책은 스스로 그 선택을 부정하는 게 되잖아요. 그러니 오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다른 생각 말고 일단 글쓰기나 해요.


고마웠다. 훨씬 성숙한 아내의 태도와 말에 존경심이 생겼다. ‘역시 명상을 허투루 한 게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10년 전 결혼할 때도 아내는 얘기했다. 오빠는 가장이 아니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 되고 다른 사람은 그에 따르는 게 아니라, 그저 둘이서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고, 그렇게 우리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난 내가 생계를 꾸리지 않으면 즉 돈을 벌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압박을 느끼곤 했다. 그 가치관의 감옥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더라도 생각의 차이에 따라 그 일에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었다.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아내가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요?

응 나쁘지 않아. 열심히 해야지.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건데?

응?

오빠는 날 왜 좋아해요?

그냥 좋은 거지.

나도 그래요.


오빠가 잘하든 못하든 오빠 자체가 좋은 거예요.
 오빠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오빠 존재,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좋아했으면 해요.

     

울컥 눈물이 났다. 여전히 난 우울과 무력감의 근원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맨 얼굴의 나를 보았다. 내가 보냈던 지난 시간을 그냥 그 자체로 떠올렸다.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여행 작가 아카데미를 수강했다.거기에서 사람들을 만나 직장에서 맺는 상하 이익관계가 아닌 그저 즐길 수 있는 모임도 하게 되었다.

동네를 산책하고 사는 집을 살펴보고 마당의 새소리를 들었다. 아내와 함께 서울의 길들을 누볐다. 전공과 상관없는 사진 찍는 일을 해서 돈도 벌어보았다. 여행 중에 거의 매일 하던 것이 글쓰기와 사진 찍기였으니.

물론 전공을 따라 건축설계 아르바이트도 했다. 소설도 써보았다. 스페인어도 배웠고 예술과 현대사상도 배워봤다.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치부하기에는 제법 많은 일을 찾아보고 시도했다. 그 속에서 여행을 찾아다녔다. 찾아다니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여행이었다. 여행을 찾는 여행.



내일은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아내가 로컬 호스트로 명상을 가미한 투어를 진행한다.

나도 함께 가서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어줄 예정이다. 그 후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다음날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것이다. 계속 잃어버린 여행을 찾을 것이다.


또 수면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에 침잠될 수도 있다. 슬퍼질 수도 있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그래, 불안한 마음 없진 않지만, 그래도 그냥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길 빌 뿐이다. 그저 이렇게 글을 쓴다. 지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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