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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04. 2017

여행은 철야가 꾸는 꿈

꿈에서 여행을 보았다.

기면증인가 싶었다. 

매일 갑자기 잠드는 순간과 마주쳤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3개월 정도 지나서 다시 취직을 하였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까지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건축설계. 야근과 철야가 많은 직장이었다. 여행하기 전의 사무실과 별로 다른 게 없었다. 어쩐지 다른 직원들과 가까워지기도 힘들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집에 와서 느껴지는 무기력함이었다. 퇴근 후에 집에 가면 아내가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야기할 게 도무지 없어서 계속 듣기만 한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할 것도 없는, 재미도, 감동도 없이 지내는 회사 생활이 떠오르고 짜증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감정 상태에서 아내의 이야기에 다가가지 못하고 집의 공기와도 섞이지 못하고 맴도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소외감을 느꼈다. 누구도 나를 배척하진 않았지만 생활의 하루하루가 폭탄 돌리기 하는 것처럼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어제는 오늘에게, 오늘은 내일에게.

 

갑자기 잠드는 것,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을 많이 하면 당연히 피곤한 것이다. 야근과 철야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그렇게라도 잠깐 눈을 붙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잠깐이 점점 길어졌다. 선 채로 잠이 들었다.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든 채 잠이 들 때도 있었다. 일할 때엔 컴퓨터에 계속 '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이 입력되었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성과를 내기 위해 악착같이 철야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직장. 그 한 복판에서 내 몸은 갑자기 잠이 들었다가 모니터로 돌진하는 머리의 무게에 놀라서 깬다. 그리고 눈을 반만 뜬 채로 얼마 동안이나 잠이 들어 버린 것인지 헤아리다 보면 자괴감에 눈동자가 떨렸다. 눈알을 후벼 파듯 비비다가 고개를 들면 상사와 눈이 마주친다. 처음엔 많이 피곤하냐고 위로하던 상사는 점점 질책으로 번득이는 눈빛을 쏘아댔다. 어디 한 두 번이어야 말이지.


하루는 야근하고 돌아오던 택시 안이었다. 이제 꿈속의 사람들도 완전히 살아서 꿈 밖으로 나왔다. 조수석에 앉아 뻑뻑한 눈을 겨우 뜨고 있으니 -난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의 어두운 장막이 덮인 강변북로 위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저기 왜 사람이 걸어가고 있나 의아해하다가 다시 앞을 보니 차창 밖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무런 흔들림이 없이 보닛 위에 앉아있는 여자는 머리를 땋고 분홍 댕기를 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투명하게 사라질 때, 그 사라짐 조차 너무 생생했다. 

생생함은 아, 이러다가는 미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한 번은 죽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실행하는 데는 망설여졌다. 아내에게 죽겠다는 말을 못 하였기 때문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나는 이제 죽겠다.'라고 말할 거라 결심했지만 아내의 모습이 보이면 그 결심은 또 흐지부지되었다.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 슬퍼 울음이 나오려는데 '이건 꿈이야.'라고 자다가 알아차렸다.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었다. 뒤죽박죽 되는 일상과 꿈속에서 어찌 된 일인지 여행하는 꿈도 자주 꾸게 되었다. 내가 갔던 여행의 장소가 꿈에서 나타났다. 꿈에서 그곳은 생생했다. 역설적이게도 실제 기억 속의 여행은 아득히 멀어져 마치 꿈만 같아졌다. 난 여행을 갔다 온 것일까? 왠지 여행을 떠올려도 즐겁지 않았다. 난 살아있는 것일까? 죽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건 꿈에서나 하는 짓이었지 나는 살고 싶었다. 현실에서 했던 여행도, 꿈에 나오는 여행도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다.


자주 우울했지만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오직 긍정만을 긍정했다.

자주 철야와 야근을 했고 또 갑자기 잠이 들었고

자주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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