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기 Mar 28. 2017

젖은 것은 너무 무겁다 1

바라나시에서

동네를 걷다보면 노인이 정갈하게 쌓아놓은 폐지더미가 보인다.

어느날 그걸 보는데 바라나시의 가트로 가는 골목길에 쌓여있던 장작더미가 떠올랐다.

전자는 삶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죽음을 위한 것인데

그 성분이나 모양이나 느낌이 너무 비슷했다.




바라나시에서는 정말 할 일 없는 날들을 보냈다. 배가 고프면 나가서 밥을 먹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 낮잠을 자고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다시 자고 일어났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잤다.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더운 날씨에도 소똥을 밟을까 등산화를 신고 나갔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과 소들을 피해가며 돌아다녀야 했다. 번잡함에 머리가 아팠다. 숙소 천장에 달린 선풍기 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 하루, 시원한 라씨라도 하나 마셔야겠다 싶어 방을 나섰다. 숨과 함께 들어오는 대기 중의 향신료 냄새와 땀의 지린내에 코가 둔해질 때쯤 소똥을 밟았다. 마른 길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등산화를 문질렀다. 그나마 좀 마른 소똥이라서 다행이었다. 


소문난 라씨 가게는 숙소에서 멀었다. 라씨는 포기하고 갠지스 강 언저리로 걸었다. 강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는 이 층에 있었다. 좌식으로 꾸민 실내에는 방석과 쿠션들이 널브러져 있어서 손님들도 그곳에 기대어 널브러져 있었다. 라씨도 있었다. 골목으로 향한 창 옆에 기대앉아 라씨를 빨아먹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체가 둥둥 떠내려가는 게 보였다. 운구 행렬이었다. 땀으로 번들한 얼굴의 남자들이 머리 위에 상여를 이고 가고 있었다. 상여라기에는 초라한 들것이었다. 금빛, 붉은 꽃 빛으로 덮인 그것의 움직임이 마치 강 위를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누워있는 망자의 영혼은 조금 있으면 바라나시의 화장터에서 연기로 변해 갠지스 강을 따라 신을 만나러 갈 것이다. 육신은 그 영혼의 유영을 먼저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것을 타고 좁은 골목의 공중을 헤엄치고 있었다. 죽음을 횡단하는 시체들의 배영.


람람 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운구하는 남자들이 읊는 ‘신은 알고 계신다.’라는 만트라가 좁은 골목의 벽에 반사되어 울려 퍼졌다. 나른한 인도의 오후, 그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빈 잔에 꽂힌 빨대의 마른 떨림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노곤한 머릿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만트라를 삼키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진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우진아.

‘아우 씨.’

우진아.

와요?

여 함 와보그라.

여 할아버지 오줌 좀 누이도. 여 바가지 함 대봐라.

아, 눈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억지로 일어나 할아버지 방으로 건너갔다. 발걸음마다 신경질이 후두두 떨어졌다.


오른쪽 뇌에 온 거라가 신경질을 많이 낼 낍니다.


할아버지를 진료한 한의사가 한 말이다. 중풍. 뇌졸중. 쌀쌀한 3월, 장손을 군대에 보내고 소주를 물 컵으로 한 컵 마시다가 그렇게 오른쪽 뇌가 망가진 할아버지는 그럼에도 나에겐 짜증을 내지 않으셨다. 똥오줌을 받아주는 손자에게는 비루하지만 고분고분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의 그 신경질은 유난히 할머니를 향했다. 친척 어른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정을 떼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 정감 있게 대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그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말대로라면 나에게는 그 떼실 정도 없다는 것 아닌가?


머라카노! 내는 니 씨부리쌌는 거 머라카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 지독한 깅주 최씨, 아이고, 몸서리예이!


할아버지의 어두운 귀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말은 모두 욕이나 잔소리로 변환되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가문까지 들먹여가며 모진 말로 할머니의 병간호를 거부하셨고, 부모님은 맞벌이로 돈 버느라 바빴다. 선택의 여지없이, 휴학 후 입대 전까진 별로 할 일이 없던 내가 병간호를 주로 도맡게 되었다. 별로 할 일이 없었나? 하고 싶은 일을 병간호 때문에 못하게 된 것 아니었나? 나중에는 그마저도 모호해졌지만, 처음에는 억울했다. 주어진 상황에 자신이 하고 싶은 선택이 없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입대 전, 아르바이트해서 복학할 등록금도 마련해두고 여행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나는 모로 누워계신 할아버지 앞에 조그만 바가지를 갖다 대고 있어야 했다. 상황이 그러한데, 어디라도 놀러 가라는 할머니 말이 마음을 더 긁었다. 할아버지께서 나에게만 부드럽게 대하시는 것 때문에 오히려 괜히 미안했고 또한 부담스러웠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나는 날 낳아줄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 병든 노인에게 미안해야 하는가. 그가 나를 직접 낳은 것도 아니고 나를 키워준 것도 아니다. 직접 낳았다 한들 그게 왜 내가 갚아야 할 빚이 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 것일까? 심지어 부모들이 한 짓이라곤 쾌락에만 골몰하다가 우리를 세상에 내동댕이친 것뿐이라고 한 사드조차도 자신의 어미를 혐오하고, 아비는 숭상했다. 내가 원한 선택은 그게 아니다. 둘 다 미워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오른쪽 뇌가 멀쩡한데도 날이 갈수록 신경질이 늘어가던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던 나는, 다 미워하는 걸 선택했다.


우진아, 뒤에도 대봐라. 똥도 나올 거 같은데. 아이고……. 나올랑가 모르겠다. 그라고 저 방 가지 말고 이 방에서 텔레비전 보고 놀아라. 알았제? 여 있그레이.

예, 예. 힘 함 주보이소. 딴소리하지 말고, 쫌.


똥이 더러워서 피하기도 하지만 무서워서 피할 수도 있다는 걸 할아버지 때문에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똥을 쌀까 두려워 밥을 많이 드시지 않았다. 그러니 똥은 더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더 오래 그리고 자주 바가지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진절머리가 났다.      


할아버지 곁에서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나의 유일한 생활은 비디오 감상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가구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안방에서 영화 속 방방곡곡을 미친 듯 헤매었다. 홍콩, 할리우드, 유럽,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3신도쿄시까지. 대변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할아버지의 괄약근을 하루에 몇 번씩 보았고, 그만큼 비디오테이프가 데크에서 밀려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계속 하루 위에 똑같은 하루가 가라앉고 있었다. 유덕화와 주윤발은 총을 맞고 또 맞아도 죽지 않았고, 피를 그렇게나 많이 흘린 스티브 부세미도 바로 죽지 않았다. 제3신도쿄시에는 사도가 계속 출현했고, 신지는 계속 에바에 탑승해야 했고, 나는 계속 할아버지의 똥을 받아야 했다. ‘출발! 비디오 여행자’는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할아버지처럼 가구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요는 매우 두툼했다. 합성 스펀지가 아니라 목화솜이 들어가 있는 오래된 것이었다. 솜 집에서 풍성해져 온 솜에 빳빳하게 풀 먹인 홑청으로 이불과 요를 새로 단장하는 것이 할머니께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치르시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요가 새롭게 푹신해진 날이면 그 위에서 구르거나 형과 레슬링을 하곤 했다. 우리가 신이 난 만큼 할아버지도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셨다. 

    

그랬던 요에 할아버지께서 오줌을 싸셨다. 대신 쓸 수 있는 요도 없는 상황이라 세탁을 할 수도 없었다. 일그러지는 할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할아버지의 다리를 한쪽으로 접어서 마른 수건으로 소변을 닦아낸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나서 깨끗한 수건을 물에 흥건히 적셔 다시 요를 닦아낸다.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한다. 요의 누런 얼룩이 어느 정도 빠진 다음 마른 수건으로 요를 꾹꾹 누른다. 반복한다. 할머니는 관세음보살을 입으로 계속 웅얼거리시지만 요를 말리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제 마른 수건을 여러 장 겹쳐서 위에 깔고 밟기 시작한다. 자근자근. 수건에 찍히는 발자국 사이에 빈틈이 없게 계속 밟는다. 발자국마다 마른 수건 위로 젖은 요의 물기가 올라왔다. 젖은 수건을 치우고 새 수건을 다시 깐다. 자근자근, 자근자근. 발과 발 사이에 리듬이 들어온다. 리듬이 팔로 간다. 한 발을 움직일 때마다 팔도 들었다 내렸다 한다. 제자리에서 행진하는 발걸음이 된다. 할아버지는 요 위에서 놀던 우리 모습을 볼 때의 그 표정으로 웃었다.


허허, 어이구 잘한다. 우리 잘난 사람. 그래, 춤도 추고 어이구 잘한다. 허허허.


이제 몸은 자기가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팔도 다리도 멋대로 움직인다. 또박또박 맞던 박자도 뒤엉킨다. 난 돌아서서 애써 할아버지께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웃음을 지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눈이 떠지질 않는다. 발가락 사이로 물기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로부터 돌아선 나의 팔다리는 여전히 덩실거리고 있었다. 2주 후면 입대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젖은 것은 너무 무겁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