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
깔끔한 기분으로 이제 소풍 할 장소로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그 친구들과 같이 간 곳은 놀이공원이었다. 게임시티라는 곳인데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함께 조성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친구들이 지불해주었다. 안에 들어가자 놀이공원이라고 하기엔 미안할 정도의 시설들이 구색만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친구들을 신나 보였다. 롤러코스터를 탔다. 긴장감 없는 소규모 롤러코스터였다.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서울에선 더 짜릿한 것들을 탈 수 있는데 왜 머나먼 외국까지 와서 이걸 타고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여자아이들 세 명은 잔뜩 기분이 '업'되어 있는 것 같아서 즐거운 척했다. 롤러코스터 표는 우리가 계산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다 우리가 계산했다. 카라윅 공원으로 가는 택시비도 우리가 냈고, 공원 입장료는 다섯 명이면 얼마라고 린린이 우리에게 말해줬다. 돈을 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당연히 우리가 계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좀 이상했다.
공원에 들어오니 넓은 호수가 있다. 호수 한가운데는 커다란 거북선 같은 배가 있었는데 수상 레스토랑이었다. 그곳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 레스토랑에 가자고 할까 봐 좀 겁이 났는데 다행히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었다. 그 친구들이 도시락을 싸왔다며 삼단으로 된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밥과 나물 반찬, 국이 소박하게 담겨있는 도시락이었다. 그런데 도시락이 하나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도시락을 자기들은 괜찮다며 우리더러 먹으라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당황스러웠다. 공원에 오면 사 먹을 곳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어쩔 수 없이 고맙다며 같이 나눠 먹자고 했다.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어 보니 예상했던 바와 달리 그들은 학생이 아니었다. 스물 안팎의 어린 나이임에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스카라를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 우리와 만나기 위해 회사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쓸 휴가를 우리를 위해 오늘 앞당겨 쓴 것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 말을 듣자 바로 전 '왜 다 우리가 계산을 해야 하지?'라고 의아해했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환대와 친절 너머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들은 오늘 우리를 만나기 위해 회사에 하기 어려운 말을 꺼내야 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가져야 할 몫의 도시락을 우리에게 베풀 것이라 다짐하고 아침에 집에서부터 먼 이곳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현지인이기에 더욱 생소할 수 있는 환전 같은 일을 주의를 기울이며 알아봤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어떻게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이렇게 친절한 마음을 낼 수 있었을까. 부끄러웠다. 부끄럽고 고마웠다. 그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도시락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그것도 모르고 꾸역꾸역 배에 채워 넣었던 내가, 양이 좀 부족하다고 살짝 아쉬운 마음을 가졌던 내가 정말 부끄러웠다.
이 친구들은 정말 먼 곳에서 우리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들이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공원에서 큰 거리로 나와 트럭을 탔다. 2.5톤 되는 트럭인데 짐칸에 사람들이 타고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갔다. 가는 동안 아내가 불편하지 않을까 신경 쓰는 그들의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조금 크게 덜컹거리기라도 하면 아내를 잡아주었다. 얼마나 오래갔을까? 해가 중천에서 기울고 주황빛이 강렬해질 때즘 동네 어귀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집에 처음 방문할 때 선물을 사 가는 것이 예의다. 뭐를 가져가면 좋겠냐고 물어보자 빵을 사 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했다. 그들이 고른 식빵 한 봉지를 사서 동네로 들어갔다. 나무를 엮어 만든 열대 지방 형식의 집들이 흙길을 가운데로 마주 보고 줄지어 서 있었다. 한 명씩 각자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부모님들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우리가 드린 빵을 우리에게 대접했다. 따뜻하고 맛있는 밀크티와 함께. 린린의 집에 가자 우리에게 보여주겠다며 DVD를 틀어주었다. 이효리의 뮤직비디오 영상이 나왔는데 음악은 신화의 노래가 나왔다. 음악과 영상이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게 섞였다.
세 명의 집에서 모두 따뜻한 환대를 받고 마을의 사원으로 갔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원에서 그들과 함께 기도를 하였다. 그들은 부처님께 우리가 무사히 여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두워진 저녁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전화기로 택시를 불러 주었다. 우리가 어디까지 갈 것이며 가격은 얼마에 하라고 어린 나이임에도 택시기사에게 단호하게 일러두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기껏 같이 소풍 하면서 돈 좀 쓴 걸로 기분이 언짢아졌던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얀마를 떠나기 전 꼭 안부 전화를 하리라 약속하면서 우리는 택시에 올랐다.
이들은 어째서 생면부지의 여행자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것일까? 여행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란 종이 망하지 않고 이 지구에서 지속되어 온 것은 생물학적인 유전자를 물려주어서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무언가를, 살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를 서로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에서 만난 마음이 모두 따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쁜 기억은 그저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지만 좋은 기억은 의지를 동반하는 것 같다. 생의 의지를. 돌아오는 택시 밖으로 보이던 양곤의 거리는 한국보다 훨씬 어두웠지만 그만큼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