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 01 | 검은 점

飛蚊症

by 키코

눈앞에 검은 점이 떠다닌다.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 유독 잘 보여서 오른쪽으로 기울여서 핸드폰을 본 지 몇 달이 됐다. 오른쪽이 익숙한 사람들과 달리 난 왼쪽이 더 익숙했다. 글씨도 왼손으로 썼다가 어린 나이에 고쳤고, 밥 먹는 건 양손 쓰는 척 교묘하게 넘어갔는데 왼손으로 먹는 게 더 편하다. 양치질도 왼손, 구기종목을 할 때도 왼손으로 던지는 게 더 기록이 좋았다. 다리를 꼴 때도 왼쪽이 더 편해서 한쪽으로만 꼬다 보니 골반이 틀어졌다. 편하다는 게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익숙하다고 막 쓰면 쉽게 해지고, 마모된다. 골반에서 시작된 불균형이 시야까지 번지니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이젠 왼쪽을 놓아주어야 할 때다.


방향감각이 서툰 나는 아직도 손을 보고 좌우를 구분한다. 내가 왼손을 쓰는 건 자연스러운 감각일 뿐, 언어화가 우선되어 내가 방향을 '판단'해야 할 땐 아직도 구별이 잘 어렵다. 난 바로 손등을 보는데, 왼쪽 손등에 검은 점이 선명하게 박혀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땐 가뜩이나 왼손잡이가 싫었는데 왼쪽 손에 못난 점까지 나있으니 너무 지워버리고 싶었다. 살색 크레파스로 색칠도 해 봤다. 상처가 나면 점이 딱지가 되어 사라진다길래 샤프심으로 찔러도 봤다. 물론 아파서 한 번만 찌르고 바로 그만뒀다.


필연이나 운명 같은 말을 싫어한다. 존재를 부정한다기보단 믿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력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좋은 인연을 찾는 데에만 사용되면 좋겠지만 빛에는 항상 그림자가 있듯 부정적인 운명 역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명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엔 운명 같은 악연을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게 자명하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려면 원래 괴로워야 한다. 그래서 난 운명을 극복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운명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 별 거 아닌 존재라는 걸 알게 되고, 환상이 깨어지고 성장하는 스토리도 좋다. 반대로 비극적인 운명이 눈앞에 존재하지만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도 좋아한다. 운명을 부정하진 않지만, 현실을 살아내는 것에 무게의 추가 쏠리는 이야기들. 까뮈의 <이방인>과 그의 삶을 아우르는 실존주의도 궤를 같이 한다.


손목에서 자라난 검은 점이 내 몸 안쪽을 깊숙이 침투하여 내 왼쪽 눈까지 번진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지극히 운명론적인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손목에 돋아난 점이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아우르는 '체호프의 총'이 된다는 건 막의 중반부쯤 지나가는 주인공으로선 끔찍하다. 어서 빨리 시야에서 벗어나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게 주인공으로선 기우, 영화로선 맥거핀이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왼쪽'을 함부로 하지 않을 테니, 나의 '왼쪽'을 돌려달라고. 책을, 모니터를 볼 때 한 구석을 떠다니는 먼지 같은 녀석을 마주하면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그럼 이렇게도 볼 수 있겠다. 이 검은 점이 내 인생을 비극으로 운명 짓는 도구가 아닌, 회개의 도구로서 작용할 있다는 거다. 왼쪽에 기대어 왔던 삶에 오른쪽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장치로서의 역할 같은 것 말이다. 오른쪽을 사용함으로써 왼쪽으로 기울였던 내 몸과, 조금 더 추상적인 '불균형'의 무언가를 맞춤으로써 한층 더 성장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엔 신의 선물처럼 눈앞의 검은 점이 서서히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주인공은 오른쪽의 쓸모를 다시금 깨닫게 되고 왼쪽의 소중함 동시에 알게 되면서 두 방향에 공평한 편의와 노동을 제공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물성의 의미를 넘어서는 삶에 대한 비유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검은 점은 내 인생의 부유물이 되어 죽는 날까지 함께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검은 점을 최대한 외면하고, 오른쪽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네버랜드로 안내하는 검은 팅커벨처럼 둥둥 떠다니며 나를 시선 끝으로 이끈다. 살기 위해서는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살지 않기를 택했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만, 삶을 택했다면 답은 한 가지인 것이다. 이건 낙관주의도 아니고, 긍정의 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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