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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Dec 15. 2020

집에 가는 시간을 물어봐 줘서 좋아.

몇 시에 끝나요? 끝나면 데리러 갈게요.


나는 집을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무리 즐거운 일이 바깥세상에 펼쳐져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충만함을 다할 길이 없다. 여행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 느껴지는 안락함도 사랑한다. 가끔은 집에서 아무 이유 없이 나 혼자 소리칠 때도 있다. 너무 좋아!!! 하지만 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하니까. 꼬박꼬박 출퇴근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공유 캘린더로 나의 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편은 나에게 연락을 한다. 몇 시에 끝나요? 끝나면 데리러 갈게요.




시작은 ‘그알싶길’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와 지인들 사이에는 ‘그알싶길’이라 불리는 길이 있다. 당산역에서 한강시민공원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이 길이 ‘그알싶길’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 중 하나인 신정동 엽기토끼 및 당산동 토끼굴 살인사건의 주요 사건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 현장마다 무서워한다면 발 디딜 곳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알싶길’은 내가 결혼 후 매일 걷던 길이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던 친구에게 연락이 올 정도였으니까. 야, 여기 너네 집 앞 아니야?


그알싶 사건 현장이라니, 나는 귀갓길이 너무 무서워졌다. 퇴근시간에는 유명 맛집을 찾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한 골목이었지만, 10시를 넘어서면 골목의 표정이 바뀌는 듯했다. 어쩌다 한 번, 약속이 생겨 늦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길이 너무 무서웠다. 그때부터, 나는 남편에게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빠, 나는 몇 시 열차로 도착해요. 그럼 남편은 시간 맞춰 나를 데리러 지하철역으로 왔다. 내가 무서워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남편도 걱정이 되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남편은 어김없이 나를 마중 나왔다. 어느 날은 개찰구 앞 벤치에 앉아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출구 앞에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가끔은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길의 중간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깜빡 잠이 들지 않는 이상, 항상 나를 마중 나왔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차가 생겼다. 시어머니가 새 차를 사시고, 본인이 쓰시던 차를 물려주신 덕이다. 남편은 차의 잔존가치가 200만 원밖에 안된다며 웃었다. 우리 절대 200만 원 넘게 수리하진 말자. 차보다 수리비가 더 나오면 곤란하잖아. 하지만 남편은 그 말과는 달리, 훨씬 더 차를 잘 돌봤고, 여전히 타고 있다. 특히 매일 6시 반에 출근하게 된 지난 3년간 차는 남편의 발이 되었다. 남편은 매일 차로 출근하고 차로 퇴근했다. 남편의 귀가시간은 카카오 지하철이 아니라, 티맵의 도착 예정 알림이 알려주었다.


그때쯤부터인가. 남편은 아예 나를 데리러 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매번 데리러 오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일정이 맞거나, 비슷한 위치에 있을 때 정도? 나는 가끔 당첨되는 이 행운이 너무나도 좋았다. 귀갓길이 외롭지도 않고, 몸도 편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올림픽대로에서, 한강 위로 반짝거리는 빌딩 불빛들이 예뻤다. 우리가 좋아하는 곡으로만 가득 찬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항상 데이트를 나온 기분이었다. 남편은 종종 데리러 와서 좋은지 물었고, 나는 한 번의 예외가 없이 너무 좋다고 대답했다. 때론 ‘데리러 오나?’ 하고 애교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항상 못 이기는 척 나를 데리러 왔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남편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항상 나를 데리러 오게 되었다. 심지어, 남편은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한 일정을 만들 때도 있었다. 때로는 안락함에 취해서 남편의 마중을 당연히 여길 때도 있었다. 동시에, 왜 이렇게 매번 데리러 오는지 의아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너무 합리적이지 않은 동선일 때에는 그냥 직접 가겠다고 거절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너머에는 남편의 배려가 있다. 나의 편안함을, 나의 안전함을, 나의 행복을 위한 남편의 배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이 말이 사랑고백처럼 달콤하다. 몇 시에 끝나요? 끝나면 데리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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