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
그녀가 우렁찬 빗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오늘 또한 그에게서 연락이 없음을 확인한 시간은 정확히 새벽 4시 5분이었다. 빗소리에 하늘은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K에게서의 메시지가 와 있었더라면 그런 일들 또한 나름대로 행복했으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침대 한 편에 자리 잡은 K가 선물했던 인형은 그녀가 애처롭다는 듯이 초점 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익숙히도 낯설게 세 달째 반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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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K와 헤어진 그날, 그녀는 친구들의 위로와 함께 그에 대한 악담을 개운히도 털어놓았다. 그날 그녀는 처음 보는 누군가와 서로의 몸을 탐닉했고 다음 날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 세 달 간 함께 했던 K를 핑계로 늘 친구들을 불러 모았고 그의 편집된 악행을 안줏거리 삼아 술을 기울였다. 한 번 시작된 거짓된 말들은 그녀와 K가 함께 경험했던 모든 기억을 그녀 스스로에게도 왜곡 시켰고,그녀를 K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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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과 그녀의 하룻 밤 사랑은 마치 한(恨)에 맺힌 듯 진행되었고 이제 그녀에게 K는 단순히 본인의 욕구를 풀기 위한 일종의 '수단'그 이상도 아니었다. 아마 그녀가 세 달째 K의 꿈을 꾸는 건 단순히 그녀가 스스로의 타락을 합리적으로 타협 시킬 수 있는 '자기방어기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