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아마도

핑크 플로이드, <Wish You Were Here>을 듣고

by Barrett

6-70년대 록의 본고장, 영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를 꼽자하면 비틀즈, 레드 제플린, 롤링스톤즈 등 수많은 밴드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에 한 획을 그은 핑크 플로이드가 빠질 수 없다.


핑크 플로이드는 1965년 결성하여 1994년에 해체한 영국 록 밴드이다. 사회비판적이고 철학적인 가사들과 다양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음악에 녹여내며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중 가장 성공한 밴드로 불린다.


밴드 결성 이후 멤버 변화를 거쳤다. 기존 멤버로는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리처드 라이트였으나 리더였던 시드 바렛이 약물 및 정신적 문제로 인해 팀을 탈퇴하고, 데이비드 길모어가 합류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기존 사이키델릭 록이 주 장르였던 시드 바렛 체제에서 로저 워터스 체제로 넘어가 프로그레시브 록이 중심이 되었다. 1973년, < The Dark Side Of The Moon >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점을 찍으며 대중성으로도, 예술성으로도 큰 호평을 받으며 엄청난 성공을 이뤘다.

< The Dark Side Of The Moon >으로 뜨거운 기대를 받은 핑크 플로이드는 1975년, 앨범 < Wish You Were Here >을 발매했다. 총 다섯 트랙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러닝 타임이 44분에 달한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과 마지막 트랙은 모두 Shine on You Crazy Diamond로 앞 글자를 조합하면 SYD, 즉 전 멤버 시드 바렛의 이름이다. 제목에서 칭하는 ‘crazy diamond’도 시드를 의미한다. 그렇다시피 < Wish You Were Here >이라는 앨범 자체가 시드 바렛을 향한 이야기이자,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이 시드 바렛을 기리는 앨범이다.

1975년, 새 앨범의 곡 녹음 중 스튜디오에 한 대머리 남자가 들어온다.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녹음하는 핑크 플로이드를 가만히 바라봤다고 한다. 모두 새로 고용된 음향 기술자인 줄 알았으나, 시드의 오랜 친구였던 로저 워터스는 어느 순간 알아챘다. 그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시드 바렛이었다.

멤버들은 무너진 시드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시드를 위한 음악을 만들기로 한다. 그 앨범이 바로 < Wish You Were Here >.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에게 시드 바렛은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 그리고 무엇보다 학창시절부터 정상을 꿈꾸며 함께하던 소중한 친구였다. 팀을 이끌며 빛나던 친구가 몰락해가는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보지 못할 괴로운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손을 뻗지는 않았다. 시드를 향한 음악은 만들 수 있었어도, 시드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 Wish You Were Here >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몰락한 시드 바렛은 어쩌면 핑크 플로이드에게 있어 또 하나의 대작이 되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들에게 동정을 품는다. 나와 동등하다고 생각했던 이의 나약한 면을 마주할 때면 더욱 그렇다. 동정은 가슴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본능과 같은 감정이다. 바닷가에서 혼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아이를 구원해 주고 싶은,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는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가고 싶은 일차원적인 본능. 그러면서도 선뜻 다가가진 못한다. 그 순간 자신에게는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동정'과 '도움'은 다르다. 동정은 한 발짝 뒤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도움은 두 발짝 더 다가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걸음을 내딛는 모든 순간에 고민한다. 할까 말까, 혹은 가볼까 말까. 자신을 향해서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결정을 타인을 위해 쉽게 내릴 수 있을까. 동정하는 대상에 손을 내미는 것은 막중한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인간은, 책임이 주는 무게를 두려워한다. 그저 가벼운 어깨로 모든 일들이 자연스레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힙노시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등 세계 최고 뮤지션들의 lp커버를 담당했던 디자인 그룹과 여러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평소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교수님이 이 영화를 추천해 주셔서 학교를 마치고 바로 보러갔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서 멤버들이 < Wish You Were Here >앨범의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드 바렛을 염원하는 곡일지 모르겠지만 그가 돌아온다고 함께 생활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고난 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계속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를 일으켜주었을까? 실제로 1970년, 시드 바렛의 정신질환이 조금 완화되었을 때 발매했던 앨범인 < Barrett >을 데이비드 길모어와 리처드 라이트가 도와줬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함께 음악을 하자고 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엔 입으로만 내뱉을 수 있는 행동들이 있다. 행동으로는 섣불리 행할 수 없는 일들. 그런 일들이 있다.


동정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쉬워도 함께하는 것은 어려울 때가 있기에.


망가진 너와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네가 우리의 음악이 되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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