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거울 속 낯선 이

얼굴

by 현우

오늘은 퇴근하고 씻다가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게 됐다. 세안 후 물기를 닦아내다 멈칫했다. 어딘지 내가 아는 사람 같긴 한데 묘하게 어색하고 낯설다. 손끝에 걸린 팔자주름과, 예전보다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가 내가 알던 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얼굴은 거울 반대편 저 얼굴보다 더 밝게 웃을 줄 아는 얼굴이었는데 말이다.


불쑥 떠오른 생경한 감정을 뒤로한 채 생각에 잠겼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외형을 확인하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평소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잊고 지냈던 내 얼굴의 변화가 문득 낯설게 다가와 나는 당혹감과 함께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흔히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 주름의 개수를 관리하라는 말이라기보다는, 그 얼굴에 어떤 시간이 쌓였는지를 돌아보라는 뜻에 가깝다. 나도 거울 앞에서 그 말을 떠올리게 됐다. 그렇다면 내 얼굴은 그 긴 세월 동안 나도 모르게 굳어져 온건 아닐까.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묻는 일은 결국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지만, 어느 날 문득 마주하는 ‘낯선 얼굴’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 시간의 물결이 얼마나 거셌고 멀리 흘러왔는지를 일깨워 준다.


세상의 유행이 빠르게 바뀌듯 우리의 얼굴도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많은 걱정과 웃음, 치열한 결정의 순간들을 지나며 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변화다. 그래서 어떤 이의 주름은 값진 훈장일 수 있고, 어떤 이의 주름은 세월의 풍파를 견디느라 지쳐버린 흔적일지도 모른다.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아마도 상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젊음을 잃어간다는 건, 대단히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노화와 변화를 상실이 아닌 ‘깊어짐’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며 비바람을 견디는 힘을 기르듯, 얼굴에 새겨진 결들은 삶의 숙련도가 쌓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거울 속에 비친 낯선 남자는 어제의 내가 쌓아 올린 오늘의 결과물이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랑하며 살아온 흔적이 그곳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믿어본다.


가장 좋은 얼굴은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살아온 길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는 편안한 표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밤, 거울 속 낯선 이와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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