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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Jul 22. 2024

펄프 픽션

음악 일기 / 후쿠오카 / 2018.1.27

글쎄. 나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아마 스마트폰일 것이다. 이런저런 알림을 확인하면서 나는 정신을 깨우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한기 가득한 공기 속으로 하루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다이소에서 산 두툼한 실내화가 이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아침부터 맨발로 찬 바닥을 밟는 일은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보일러를 돌리고, 온열기구들을 켠다. 오래된 이중창 사이로 들어온 외풍에 펄럭이는 커튼을 열었더니, 햇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과 나를 비집고 들어온다. 규수 대학 근처 가게에서 1000원이 약간 넘는 가격에 사 온 하와이산 머그컵에 커피를 내린다. 미국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형사들이 주로 사용할 것 같은 디자인과 크기의 컵이다. 따뜻한 커피를 몇모금 마시자, 부탄가스 하나로 돌아가는 자그만 가스난로가 퍽퍽 거리며 꺼진다. 기계적으로 부탄가스를 새것으로 간다. 부탄가스도 1000원이 약간 넘는다. 천 원이 약간 넘는 것들이 나의 아침을 따뜻하게 해 준다.


캐널 시티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클러치라는 카페가 있다. 테이블은 4개쯤 되려나, 그리고, 가게의 절반 이상을 바가 차지하고 있다. 그 바 안에서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좋아할 것 같은, 캡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커피를 내린다. 처음 가게에 들어서면, 코팅된 초록색 종이 메뉴판을 주면서, 담배를 피우냐고 물어본다. 곧, 커피와 초콜릿과 말보로 로고가 새겨진 재떨이를 가져다준다. 


나는 귀퉁이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소파는 전체적으로 연한 녹색이고, 좀 더 짙은 녹색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로로 그려져 있다. 녹색줄 안에는 마름모꼴의 단추 무늬가 역시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혀 있었다. 전체적으로 선인장 같은 느낌을 주는 소파였다. 하지만, 느낌과는 달리 소파는 매우 푹신했다.


소파 위로 금장 테두리의 큼지막한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액자에는 펄프픽션의 두 남자 주인공인, 사무엘 L. 잭슨과 존 트라볼타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존 트라볼타만 담배를 물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카페에 온 커트 머리의 젊은 여자는 핫 샌드위치와 담배를 동시에 물고 있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몸집이 넉넉한 중년의 신사는 파란색 비닐 포장의 초콜릿을 벗겨 먹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채 담배를 물고, 읽히지 않는 소설책을 펼쳤다. 담배보다는 분위기를 피우고 싶었던 건지도...


오늘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중 하나를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수지의 개들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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