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기 / 뉴욕 / 2014. 9. 3 망원
고양이의 무심함을 배우고 싶다. 녀석들은 평상시에는 아무 욕구도 없어 보인다.
'나를 인정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 이어지는 이야기로 명확해질 것이다.
27살. 나는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이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며(물론, 외부로 발설하진 않았다), 내 안의 초능력이 언젠가는 반드시 발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촛불을 눈으로 끄기 위해 2시간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했으며, 높은 곳에서 얇은 망토 하나에 의지해 뛰어내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촛불이 꺼지는 대신 눈물만 흘러내렸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발을 접질려서 한동안 목발 신세를 져야 했다.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밥 말리... 27세에 별세한 영웅들이다. 27살 뉴욕의 나는 아직 무명의 거리의 악사였지만, 곧 성공을 하든가, 아니면 죽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호의 거리를 떠돌다 우연히 타로집 앞을 지났다. 15달러. 그냥 재미 삼아 볼 생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상한 향기로 약간 머리가 어질 하긴 했지만, 뭐 그런 곳은 으레 향을 피워두니까라고 생각했다. 타로 카드가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다크 서클이 짙은 점성술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뮤지션인 것을 맞췄으며, 올해 안에 성공을 거머쥔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누군가 나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누와 평범한 돌멩이 하나를 건네며, 오늘 집에 가면 이 비누로 몸을 씻고, 돌멩이는 베갯잇에 넣고 잠을 청하라고 했다. 저주의 정체는 내일 오면 알려주겠다고. 비용은 40달러였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40달러를 지불했다.
다음날 어학원 쉬는 시간에 전화가 울렸다. 점성술사였다. 2시쯤 들를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2시에 타로집 앞으로 갔다. 타로집 앞 벤치에는 눈시울이 붉게 물든 금발의 미녀가 앉아 있었다. 금발 미녀는 한국말로 하면, 이 집 참 용하다고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점성술사는 저주의 정체가 내가 언젠가 사귄 여자의 고모가, 저주를 업으로 하는 점성술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걸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저주를 푸는 점성술사라고 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점성술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저주를 거는 자와 푸는 자. 그러면서 나에게 이 작업을 계속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존메이어가 얼마 전에 다녀갔다는 말을 더하면서. 우연히도 나는 전날 밤 존메이어와 횟집에서 회를 먹는 꿈을 꾸었었다.
작업을 계속하는 비용은 1,000달러. 나한테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의 스피릿이 돈이 있다고 말한다며, 모퉁이를 돌면 시티뱅크가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우연찮게도 그 시기에 나는 미국에서 기타를 사기 위해, 한국에 두고 온 기타를 팔아 돈을 받으면 은행으로 좀 부쳐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텅텅 빈 내 통장에는 1,000달러가 들어 있었고, 나는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머리와 ATM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돈을 뽑고 있는 내 손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저주 해체 작업은 점집 2층에서 이루어졌다. 이상한 향이 감도는 다락방 바닥에 반쯤 정신 나간 내가 누워있다. 점성술사는 음악을 튼다. 인도어쯤 되는 것 같다. 편하게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한다. 눈을 감은 내 눈앞에는 오색찬란한 금빛 아우라(만트라)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으며, 기분이 점점 좋아지다, 곧 잠에 빠졌다.
작업 후 나는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점성술사는 마지막 과정이 아직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다음날은 비가 왔고, 점성술사는 자신의 2호점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2,000달러가 필요하며, 역시나 내 영혼은 돈이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아차! 하며, 스스로를 속으로 엄청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너는 내가 1년 안에 성공할 것을 확신하지?"
"물론, 그렇고 말고" 점성술사가 말했다.
"내가 성공하면 그깟 2,000달러 아무것도 아닐 거야, 7배로 갚아줄게. 지금 그냥 해줘."
"그렇게는 못해. 성공은 어디까지나 너 하기 나름이지."
"응, 알았어. 그럼 나 시티뱅크 다녀올게."
나는 추적추적 비 오는 거리를 한동안 비틀거리며 걷다, 나도 모르는 새에 스스로가 만든 저주의 거리를 벗어났다.
점성술사는 마지막에 가서야 유일한 진실 하나를 말한 것이다. 나는 1,000달러의 비용으로 귀한 인생의 교훈 하나를 얻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타로는 그저 5,000원 주고, 홍대 앞에서 재미로 보는 정도, 거기까지가 좋은 것 같다.
물론, 안 보는 게 제일이고.
그 이후, 나는 누군가의 인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