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찬준 Mar 08. 2024

겨울을 나는 방법

음악 일기 / 뉴욕 / 2014.10.6 망원

요즘은 윌리엄스버그에 자주 간다. 맨해튼이 홍대라면, 윌리엄스버그는 연남, 상수, 합정 같은 느낌이다. 형형색색의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보통 중고가게에서 옷과 신발을 사는데, 윌리엄스버그에는 질 좋고 값싼 중고들이 찾으면 찾을수록 계속 나온다. 뉴욕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있을지도 모르겠다.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어디까지나 물건 이야기다.


플리마켓에서 디자이너들이 손수 제작한 티셔츠 한벌을 샀다. 검은 오징어가 막대를 들고 무언가를 연주하는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 가격은 20달러. 밀집으로 어닝을 만들어 놓은 surf bar를 지나친다. 도시 한가운데 surf bar라니, 선글라스를 낀 여자들도 surf bar의 외관에 압도당해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한다.

  

흑인들이 주차장과 공사 외벽에 옷걸이를 걸고, 옷을 판다. 멋진 재킷과 외투들이 많다. 나는 지금 입고 있는 검은색 얇은 코트 한 벌로 이번 겨울을 나기로 했다. 옷들과 차들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풍경은 앙상한 가로수들과 어울려 알 수 없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추운 날씨에 발이 얼얼했고, urban rustic의 야외 메뉴판 앞에 걸음을 멈췄다. 카페 안은 따뜻했다. 뜨거운 감자 수프를 먹고 나니 몸이 녹았고, 곧, 피곤이 몰려왔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주변을 살피고 급히 카페를 나온다. 다시 거리를 걷는다. 전반적으로 노랗다는 느낌의 외관인 뉴욕머핀. 날은 춥지만, 카페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기다릴 사람이 없었다. 하릴없이 초코머핀 하나로 배를 채웠다.


해골 머리에 X자로 가위가 꽂힌 로고를 내걸고 있는 미용실을 보고, 나는 청량리 푸마헤어를 떠올렸다. 뉴욕에 오기 바로 전날, 푸마헤어에서 파마를 했고, 머리에 랩을 쓴 채, 기타를 꺼내 라라를 불렀다. 주인형은 듣자마자 '소주 마시면서, 새벽에 만든 노래지?'라고 물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라라 : https://youtu.be/-tp2hd_S5a4?si=wpDVzmu9ISFOxMar


윌리엄스버그를 돌아다닐 때마다, 나는 관광객처럼 가게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주로 간판들을. 사실, 나는 관광객과 다를 바 없었다. 뉴욕은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들어가고 싶은 가게들도 너무 많았다. 몇몇 들어가보고 싶은 카페들을 그냥 지나쳐 지하철을 타러 간다. 커피는 하루에 두잔이면 족하니까.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늘씬한 여자가 검은 정장에 굽이 두터운 구두를 신고, 드럼과 피아노에 맞춰 나무판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겨울을 나는 각자만의 방법은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멘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