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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10. 2024

사막으로 가자

음악 일기 / 뉴욕 / 2014.10.7 망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끝나게 되면,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미트 패킹 구역을 걷는다. 예전에는 고기를 포장하던 곳. 지금도 일꾼들은 여전히 고기를 포장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뉴욕에서 가장 힙하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도시의 눈이 늘 그렇듯, 하얗던 눈은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녹아 있고, 그 위로 멋진 외제차들이 늘어서 있다. 공터 일부에 캠핑 콘셉트의 카페가 있다. 말 그대로 공터인데, 텐트를 20개 정도 쳐놨다. 그 안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텐트 안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여러 가지 눈(eye)으로 외부를 장식해 놓은 가게를 지나친다. 지켜보는 눈들? 어쩌면 안경가게일지도 모르겠다. glassybaby라는 향초집 앞에 잠깐 멈춰 선다. 다양한 색의 도로 위 차들처럼, 다양한 향기의 초들이 통유리 속에 진열되어 있다. 향을 맡을 수 없어도. 그 앞에 서서 이름을 보고 향을 상상해 본다.


첼시 마켓에 들렀다. 입구의 간이 서점에는 108가지 섹스체위 등의 책들을 헐값에 팔고 있다. 그 옆에는 손그림이 그려진 예쁜 엽서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다. 미국이란 참...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사실 예쁜 엽서에 손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다양한 섹스 체위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시장의 생동감과 활기는 언제나 기분전환에 요긴하다. 뉴욕이나 한국이나 시장은 비슷비슷하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란스럽다. 갖가지 냄새들이 섞여 있고, 또 한쪽에서는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시장 커피집에서 카페라테 한잔을 테이크아웃하고, 클래식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중년 이탈리아 부부 앞에 앉아 잠시 음악을 감상한다. 시장 내부의 높은 천장을 통해 소리들은 힘을 얻게 되고, 적당한 리버브가 생긴다. 나는 자연스럽게 감상에 젖는다. 노트와 펜을 꺼내, 멜로디와 가사를 끄적거렸다.


길 위에서


어느 날 문득 길 위에서

눈을 떠보니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더군 


난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그저 외면함으로 모든 것들 위로했네

하지만 난 


내 안에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고 

끝을 모르는 찌듬은

더 이상 싫고 


지나간 첫사랑을 생각해 보니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순수했던지 

지금의 난 뭘 그리 겪었는지

왜 더 이상 순수함 없는 나 


문득 창가에 핀 선인장 꽃이

사막 한가운데 있어야 할 그 꽃이 

내 작은 창가에서 곱게 피었네

난 그저 감사의 표시로 물을 주지만 

그 자리가 니 자린지는

너에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없는 나 


이젠 일어나

사막으로 가자. 


길 위에서 : https://youtu.be/AK5od2ivstc?si=lSR6ydznAV-rvjxW


당시에 나는 아직 잭 캐루악의 온 더 로드를 읽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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