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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15. 2024

사이렌, 그리고 부끄러운 예술가들.

음악 일기 / 뉴욕 / 2014.10.16 망원

그간 하던 것들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어제는 책상 밑에 놓여 있던 앰프와 이펙터들을 방에 널브러뜨린 채, 딜레이 이펙터 하나와 앰프 두 개를 연결해 이런저런 시도들을 했다. 모노와 스테레오의 차이를 부끄럽게도 어제 안 것이다. 연주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막연히 신선생님께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은 뜻밖의 즐거움이었다며, 고마움을 전달했고, 나는 아침부터 다시 이런저런 시도들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었다.


다음날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고, 새벽에 곰곰이 내가 보낸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은 최대와 최고를 얘기하는데, 가장 최소한의 것으로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시금 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그저 부끄러웠다. 대화는 비움과 채움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고, 물론, 나는 비움이 훨씬 더 어려운 쪽이다. 그리고 예술 이야기.


선생님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과 최소한의 식물적인 저항이라는 표현을 들어 예술을 얘기했고, 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가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예술작업(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은 그 품위와 존중에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선생님은 조각을 30년 넘게 해왔음에도, 본인의 작업을 예술작업이라 말할 때, 가로를 쳐서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할 만큼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부끄러운 예술가들의 대화는 이어졌고, 나는 몸이 뜨거워졌다.


아! 싱그러운 5월의 뉴욕이여! 날씨는 따뜻해졌고, 볕 좋은 공원에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나는 소호의 휴고 보스 매장 옆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휴고 보스 매장 옆에 자리를 잡은 것은 내가 휴고 보스를 좋아해서는 물론 아니었고, 매장 옆 벽에 달린, 비 가림막이 소리를 잡아줘서, 마이크 없이 하는 나의 노랫소리가 한층 더 잘 들리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던 트럭이 노래 중인 내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나를 바라본다. 꺼지라고, 중간 손가락이라도 내밀려나 싶었는데(물론, 거리에서 노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경우를 만난 적은 없지만), 씨익 미소를 날리며 엄지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더니, 다시 갈길을 간다. 


아, 얼마나 여기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는가? 나는 다시 용기를 얻었고 노래를 불렀다. 'in my side'를 한참 부르고 있는데, 누가 기둥 뒤에 숨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두 곡 정도 더 불렀을까, 멀끔한 남자가 기둥에서 튀어나오더니, 내 기타 케이스에 종이쪽지 같은 것을 집어넣고, 급히 사라졌다. 나는 종이를 꺼내, 펼쳐보았고,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in my side : https://youtu.be/4CiydHVlh9o?si=cV7Euh6xzOLNT4ug


nice,

nice,

nice,

nice,

nice,(마지막 nice에는 밑줄이 여러 번 그어져 있다.)

10 minutes late for an appointment

you were a siren singing me 

to a beautiful ship wreck(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배를 침몰시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Don`t :

a) burn out

b) get an ego

c) give up

d) go crazy 

XO Natti(nattivogel.com)


나중에 그를 검색해 봤더니, 그 역시 음악가였다. 아! 아름답게 부끄러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축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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