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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19. 2024

모두가 미친다면

음악 일기 / 뉴욕 마지막 편 / 2015.1.29 망원

미친 사람을 상대할 때는 나 또한 미쳐야 한다. 도시의 삶에서 신경증은 누구나 주머니에 하나쯤 넣어 다닐 정도로 흔한 것이지만, 반대로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점점 무뎌진다. 


'무뎌지지 마, 이런 삶도 있어, 지금이 여름이야'라며, 뉴욕은 자생적 생동감으로 도시생활자들의 무뎌진 삶에 감정적 수분을 제공하고, 뉴욕에 사는 모두를 얼마쯤은 미치게 한다. 한 사람이 미치면, 다른 이들이 그를 미친놈이라 부르겠지만, 모두 미친다면 문제는 사라진다.


오늘은 저녁 근무고, 어느덧 6월 말이다. 낮에는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다닐 만큼 기온이 높고, 뉴욕 곳곳에서 여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첼시 쪽으로 발걸음을 향해 본다. 애플 매장에 들러, 32g 아이팟 터치를 하나 장만하고, 환경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녹색 케이스도 덩달아 샀다. 아마, 이때쯤 나는 환경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시골 출신이고, 환경에 민감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환경 운동가이거나, 환경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저 자신이 자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창문으로 과자 부스러기라도 하나 버릴라 치면, 나를 호되게 나무랐고, 시내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새끼손가락크기 보다 작은 물고기가 잡히면, 다 놓아주는 성격이었다. 


뉴욕의 식당에서 일하면서, 테이크 아웃을 할 때, 본인의 그릇을 가져오거나, 배달을 시키면서,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려고, 아예 반찬을 보내지 말라고 하는 뉴요커들과 마주하면서, 나는 다시금 내 유년시절의 아버지와 만나는 것 같았다.


맨해튼의 도로정리가 잘 되어 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첼시의 어느 교차로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본인이 제작한 깡통로봇 같은 기타를 들고 나와, 맥을 펼쳐 놓고, 일렉트로닉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음악을 클락션이나 운전자들의 욕설에 방해받지 않으며 여유롭게 들었다. 한 블록을 지나자, 자신의 집 현관과 창을 활짝 열어놓고, 커피를 팔며,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와 또다시 마주했다. 뉴욕의 거리를 걷는 것만큼, 새로운 것과 자주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유니온 스퀘어에서 대규모의 기타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일간지에서 접했다. 유니온 스퀘어 근처에 다다르자,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기타는 챙긴 상태였다. 주최 측에서 나눠주는 번호표를 등에 부치고, 수백 명의 인파 속에 끼어 앉았다. 주최 측은 비틀스, 너바나, 밥 딜런, 그리고 제이슨 므라즈의 곡들이 실린 악보를 나눠줬고, 수백 명이 같은 곡을 수백 개의 다른 기타로 연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공간을 지나가던 수백 명의 인파가 걸음을 멈춰 선 채 그 수많은 기타 구름을 에워쌌고, 유니온 스퀘어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음악에 반쯤 취해 다시 걷기 시작했고, 다운 타운의 어느 공원에서 또 다른 음악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은 공원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타악기를 두드리고 있는 음악가들 주위를 둘러싸고, 각자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부족이 샤먼들을 둘러싸고 춤을 추며, 여름의 신을 맞이하는 주술적 제례 같아 보였지만, 사람들 손에는 갈색 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뉴욕에서는 야외에서 술을 먹는 행위가 금지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색봉투에 술을 넣어 들고 다니면서 마신다.) 내 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또 다른 뮤즈를 마다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뉴욕의 품에 스스로를 맡겼다. 얼마쯤 지났을까, 어둠이 짙어졌고, 사람들은 어느새 각자의 고독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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