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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21. 2024

방콕의 흔들리는 밤

음악 일기 / 방콕 / 2014.10.29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인천 공항까지 편하게 갔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새로운 여행지의 길목으로 나를 다시 바래다준다니. 내가 내린 조수석 커피 홀더에 친구 몰래 귤을 두고 내렸다.


5년 전 공항에서 생애 처음으로 수속을 밟고, 짐을 부치면서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별 것도 아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간다는 사실에 뭔가 흥분했던 것 같다.


비행 중에 엑스맨과 설국열차를 봤다. 중간에 기내식으로 나오는 오믈렛을 먹었다. 비행기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승무원은 하늘에서 보다 땅에서  우아하다.


 좌석의 아저씨들은 비행기가 서기도 전에 일어나 짐을 꺼냈고, 스튜어디스는 당황했다. 뒤에 커플이 먼저 나가려고 하자, 아저씨들은 큰소리로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됐으니, 질서를 지키자'라고 했다.


입국 수속을 밟는 줄은 꽤나 길었으며, 나는 요하가 선물해 , 사실은 내가 뺐은, 알록달록한 네팔산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입국 수속  바로 앞자리의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친구는 연신 모자가 이쁘다며 칭찬을 했다. 하지만, 태국은 벙거지 모자를 쓰기에는 너무 더웠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Bts 타고, 파야타이에서 내렸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 경찰들은 엄격히 질서를 통제했다. 된소리가 많은 태국어는 통제에 한층 위엄이 실렸다.  앞에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순한 양처럼 통제에 따랐다. 여행지에서는 괜히 질서나, 공중도덕에 좀더 민감해진다. 그래도 남의 나라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물론, 그것도 여행 초반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카오산로드까지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100. 오토바이는  사이를 요리조리 비껴가며, 순식간에 나를 카오산 로드 한복판에 내려놨다. 시선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에서는, 포마드를 잔뜩 발라 머리를 올빽한 남자가 과일이 그려진 벽을 배경으로 반라의 여자를 모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오산을 벗어나, 쌈쎈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성재형이 알려준 벨라벨라 리버뷰에 숙소를 잡았다. 싱글룸, 펜과 욕실이 딸렸다, 250. 덥고,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태사랑의 지도를 펼치고, 쌈쎈 주위를 살폈다. 팟타이 하나를 사 먹었고, 거리를 걸었다. 나는 방콕에 압도되어 기를 펴지 못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기가, 아직은 조금 두려웠다. 그래도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나는 위치도 알 수 없는 어느 골목을 걷고 있었다. 시큼하고, 무거운 냄새가 골목 사이로 부는 바람을 타고, 코를 찔렀다.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골목 귀퉁이에 자리를 깔고 우쿠렐레를 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기보다는 소리를 냈다.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걷자, 공원이 나왔고, 공원은 강과 접해 있었다. 조용히 방콕의 야경을 감상하려고,  근처로 가자, 음악 소리가 점점 커졌다. 강변에서는 테크노 음악에 맞춰 단체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동네 헬스장을 다닐 , 피트니스  옆에 딸린 요가룸에서 트롯을 틀어 놓고, 목소리가  여강사가   없이 뭐라고 외치면, 한껏 화려한 타이즈로 멋을  아줌마들은 다이어트를 목표로 춤을 따라 추었다.  풍경은 그대로  머릿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카오산 로드 여기저기에는 서양인의 손길이 닿은듯한, 손길은 아니더라도 취향,  인테리어의 바와 커피숍들이 중간중간에 있었고, 그 공간들은 나를 안으로 이끌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 그렇다고, 완전 로컬의 냄새를 풍기는 가게에 들어갈 만큼 아직 태국 속으로 들어갈 상태아니었다. 나는 그저 떠돌이었고, 이방인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와 팬을 틀고, 침대에 일찍 몸을 뉘었다. 중간에 인기척에 놀라, 창가를 봤더니, 고양이 머리 같은 것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기겁을 하고, 불을 켰다. 커튼 뭉치가 어둠 속에바람에 날려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방콕의 흔들리는 첫날밤.

나는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으며, 나는 시차에 적응해야 했다.


고작 두 시간의 시차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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