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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22. 2024

노래하며 앉아 있어요.

음악 일기 / 방콕 / 2014.10.31

일단 숙소를 홍익인간으로 옮겼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갖고 싶었지만, 성재형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짜오프라야 강을 오른쪽에 두고 걸었다. 서구의 놀이터 같은 카오산 로드에는 더 이상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 탐마싯대학교가 나왔고, 나는 학생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발만 보이는 통유리로  강당 문을 열었는데, 수업 중이라 얼른 다시 닫았다. 나는  없는 침입자. 식당은 강과 맞닿아 있었고, 강바람이 식당 한가운데를 통과해 지나갔다.  뚫린 식당이었다. 대학생들 틈에 끼어 치킨 다리 하나와 계란을 곁들인 밥을 먹었다. 그리고, 식당  카페테리아에서 물을 사서 한참이나 대학생 놀이를 했다. 대학은 린 공간 아니겠는가.


대학교는 시장으로 이어졌고, 시장 골목골목에는 세공한 불상들을 팔고 있었다. 나오는 길에 겉은 빨간색에 울퉁불퉁한 가시가 달리고, 속은 옅은 주홍빛을 띄는 과일  봉지를 샀다. 이름도 알 수 없었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과일이었다. 씨가 8/9.


국제 명상 센터에서 숨은 고양이 찾기를 잠시 하다가, 좀더 걸어 왕궁 앞에 도착했다. 관광객들 틈에 끼어 왕궁에 입장하자, 안내원이 민소매를 지적했다. 옷을 빌려 준다고 했지만, 그만큼 궁금하지는 않았다. 508번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싶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교통체증을 보고 곧 포기하고, 계속 걸었다.


왓포를 지나, 샛강의 다리를 건너자, 꽃을  바구니씩 사서 들고 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너무 무작정 걸은 탓에 몸은 지쳤고,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 세련된 외관이 눈에 띄는   테이블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홍대에 있을 법한 장소에 들어와 있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잠깐이라도 안락하게 쉬고 싶었다.


차이나 타운까지 걸을까 했지만, 너무 멀게 느껴졌고, 우연히도 오디오 타운과 만났다. 수많은 스피커들이 분해되어 좌판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곳의 사람들은 뭐든 팔아서 먹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사원에 엉겁결에 발을 들여놨고, 붉은색으로 치장된 건물 안, 자욱한 연기 속에서 화장을 짙게 한 두 사람은 패왕별희를 연기하고 있었다. 벽에는 no photo라고 적혀 있었다.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다, 로열호텔 근처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났다. 태국의 기후는 아열대 기후라 국지성 호우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당장  앞에 보이는 식당 차양 아래서 비를 피했지만, 바람을 동반한 폭우는 몸을 시원하게 적셨다.


 앞에 슬로우 모션 처럼 펼쳐지는 풍경들. 노점을 하는 어머니를 위해 남자아이는 어디선가 파라솔을 구해왔다. 말을 듣지 고 꾸물거리는 여동생의 등을 퍽퍽 때렸다. 비를 피하던 거리의 여자들은 남자아이를 린다. 신문을 파는 남자는 신문이 젖지 않게 분주한 손길로 가판을 비닐로 싸고 있다. 영업사원은 차양 아래에서 우산을 펴고  있고, 식당 주인은 밖으로 나와 비를 쳐다보며 셔츠 왼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부치고, 신문 파는 에게 말을 건넨다. 꺼지라는  아니라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차양 아래는 거리의 여자, 노점상, 신문 파는 사람, 영업사원, 내가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영업방해를 하면서. 하지만  말고 아무도 그게 영업방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누가봐도 노숙인 같은 노인이 한손에 펩시콜라를 들고 차양 아래 비를 피하려고 다. 완전히 식당 입구를 가린 채. 노인은 우리를  번씩 쳐다보더니 너무나 기분 좋다는 표정으로 콜라캔을 ‘채앵’하고  마셨다. 그 순간 내 귀엔 캔 따는 소리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콜라를 한 모금한 노인은 우리 모두를 한번씩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이 세상에 있는 미소가 아니었다. 비는 엷어졌고, 사람들은 하나둘 거리로 돌아갔다.


나도 차양 아래를 나와, 그 아래가 아마 천국이었을까, 어느 공원 젖은 벤치 위의 빗물을 손으로 훔쳐 낸 뒤 그 위에 앉아 기타를 꺼내,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하며 앉아 있어요 : https://youtu.be/LMBRoetzBxQ?si=VP66yWa35epKDJ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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