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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30. 2024

빠이 1, 사랑의 메신저

음악 일기 / 빠이 / 2014. 11.11

어쨌든 태국 여행의 목적지인 빠이에 입성했다. 편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길을 나섰다. 오토바이를 빌려, amy's earth house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카타리나가 머물고 있었고, 나는 녹의 편지를 전해야 했다. 러브레터를.


트립어드바이저와 구글맵을 재차 확인하고, 오토바이를 빌렸다. 140밧. 지도에서 가리키는 위치가 산 중턱이고, 진입로조차 없어서 약간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둘 다 믿을만한 앱이니 일단, 달려보기로 했다. 시간은 아직 아침 일곱 시 반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기름을 충분히 주유하자, 왠지 마음이 놓였다. 계기판은 오른쪽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충만. 아홉 시쯤 빠이 검문소에 도착했다. 물과 감자칩 하나를 사서 나오는데, 군인이 시킨 라면이 눈에 들어온다. 똑같은 걸로 주문했지만, 일반 쌀국수가 나왔다. 엄청나게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듯한 맛이었고, 짜디 짰다.


초행길에서는 지도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조금 놀랐지만, 목적지 근처에 거의 다 와갔다. 출입구는 없었고, 나는 주변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목적지 근처의 대로를 지나, 휴게소에 들러 길을 물으니, 태국 말로 뭐라고 가르쳐 준다. 뭔가 더 내려가면 올라가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나는 인내심을 갖고, 오토바이를 몰았고, 마침내, 샛길 하나를 발견했다.


비포장도로였다. 그렇지만, 차나 오토바이가 다녔는지, 제법 길이 잘 닦여 있었다. 도파민이 분비되었고, 진정한 모험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기분에 나는 잔뜩 흥분했다. 그리고 나는 사랑의 우편배달부가 아닌가.


길은 점점 험해졌고, 울창한 숲에 가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은 미끄러웠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고,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오토바이는 미끄러졌다. 나는 등에 기타를 맨 채,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살포시 두 바퀴 정도를 굴렀다. 일단, 오토바이부터 확인, 빌린 것이고, 나는 가난한 여행자가 아닌가, 몇 군데 스크래치를 제외하곤 아무 이상 없었다. 그리고, 내 몸 확인, 손바닥, 팔꿈치, 발 뒤꿈치 가벼운 찰과상.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기타 케이스를 열고, 마지막으로 기타 확인, 이상 없다. 오! 신이시여.


이제 나는 조금 겁이 났다. 까진 곳에서는 피가 났고, 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인적은 점점 드물어졌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은 끔찍했다. 물론, 돌아가야지라고 느꼈을 때,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다.


나는 앞으로 앞으로 달렸고,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에, 가파른 길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끌고 갔다. 그러다 드디어 마을과 마주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여기, 그 amy's earth house가 있을 거야라고 확신했다. 이름에도 지구가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렇게 외딴곳에 있을 법도 하지. 하지만, 그곳은 오지의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상식적으로 누가 그렇게 험난한 길을 올라 게스트하우스에 오겠는가. 마을은 평화로웠고, 군데군데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닭은 내 앞을 잽싸게 지나갔고, 흑돼지 새끼들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었고, 검둥개는 낯선 나를 경계하며 짖어댔다. 나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좁은 산길 반대편에서 쌀을 실은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검게 그을린 피부의 태국 사람은 영어를 조금 구사했고, 나보고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말했고, 여긴 그런 거 없고, 더 가면 길만 험난해지고, 산골짜기일뿐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라라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말했지만,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구글맵은 얄궂게도 목적지와의 거리가 100미터 조차 안 남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구글맵을 믿을 것인가, 현지인을 믿을 것인가. 나는 바보였다.


나는 그 말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고집으로, 자꾸만 산속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리고 결국엔 뒤늦게 구글맵이 틀렸음을 확인하고, 오토바이를 돌렸다. 지난번 방콕에서도 구글맵은 나를 외딴 길로 데려다 놨었다. 나는 두 번이나 속았던 것이다.


오지 마을의 다리 밑에 앉아 사진 몇 장을 찍으며, 감자칩으로 고픈 배를 달랬다.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기운을 차려,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오지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역시 쉽지 않았으며, 몇 번이고 나는 진흙탕 맛을 봐야 했다.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처음 입구에 도달했다. 아스팔트가 그렇게 고맙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도로 위 소

마을 입구 팻말

오지에도 축구가...

사람이 하나도 없던 오지의 마을

생사고락을 함께한 나의 스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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