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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Apr 18. 2024

오! 배부른 여행자여!

음악 일기 / 치앙마이 / 2014.11.16

꾸어이 짭으로 채운 배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어 졌고, 스트로베리(보스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애칭)는 장기 투숙객인 나에게 자전거 삯을 받지 않았다.


세시쯤 늦은 점심으로, 찹쌀밥(일명 스티끼 라이스)과 돼지 꼬치구이를 먹으려고, 시장으로 나갔다. 요리 수업을 듣는 무리의 여행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미리 점찍어둔 찰밥 가게에서 찰밥 두 개를 샀다. 하나당 5밧. 돼지 꼬치구이를 사 먹으려 했는데, 저번에 녹이 가르쳐준 노점상이 보이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몰려 있는 기름에 튀긴 어묵상 앞을 기웃거리다. 빰(옆 게스트하우스 사장)을 만났다. 빰은 그거 맛있으니까, 기다렸다 먹어보라고 했고, 오른손에 들린 호박을 나에게 보여주며, 오늘 저녁에 만들어 줄 테니 기대하라고 말했다. 나는 번호표를 들고, 남들이 하는 데로, 어묵을 종류별로 골랐다. 20밧. 10밧으로 오는 길에 파파야를 샀다.


녹의 가게에 들러, 녹에게도 간식을 건넸다. 나는 금세 배가 불렀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들어서자, 빰은 나에게 달큰한 코코넛 국물 닮긴 삶은 호박 요리를 내밀었고, 나는 알로이, 알로이를 외치며, 그릇을 비웠다. 이미 배는 찰대로 찼고, 나는 '임, 임'을 반복했다. '임'은 타이어로 배부르단 뜻이다.


배를 꺼뜨리려고 동네 산책을 하다, 녹의 가게에 다시 들렀는데, 이스탄불에서 공부한 애나가 나에게 새키를 권했다. 일종의 물담배로, 처음 시작하고 5분 정도는 기분이 상기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애나는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더니, 프랑스인 남자친구 챠우를 시켜 반(일종의 건포도 빵)을 사 오게 했다. 나는 넙죽 받아먹었고, 다시 배는 점점 차올랐다. 그리고 열심히 물담배를 피웠다. 기분이 좀 좋아졌고, 나는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라디오헤드, 유투, 콜드 플레이, 밥딜런, 그리고 나의 노래를 번갈아 불렀고, 고양이 띠와 벨기에인 샌디는 노래를 귀담아 들었다.


녹은 배가 고프다며, 늦은 시간 팟타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현지 최고의 파탄이라는 얘기를 녹이 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기타를 게스트하우스에 두고 가야 했다. 마당에서는 옷이 리오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나를 보자 딱 한잔만 하라고 맥주를 권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잔을 가득히 채운 맥주를 받자마자 벌컥벌컥 마셨다. 


타페 길을 따라 야시장 쪽으로 좀 걷다가 노란색 '팟타이'라는 간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자 팟타이 전문점이 나왔다. 잠시 후 나온 팟타이는 그야말로 배불러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여행 와서 처음으로 먹다 지쳤고, 부른 배를 움켜잡고 잠을 청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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