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영웅과 악당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주말 낮, AFKN 채널이나 불법 복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던 거친 함성 소리. 90년대 국민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슈퍼히어로들은 마블이나 DC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란 팬티를 입고, 얼굴에 형광색 칠을 하고, 뱀이 든 자루를 멘 채 사각의 링 위를 지배하던 WWF의 전사들이었죠.
당시 우리는 그들의 과장된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울고 웃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한 편의 거대한 마초들의 연극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세상 어떤 스포츠보다 진지한 '진짜 승부'였습니다.
상대에게 실컷 얻어맞다가 카운트 쓰리를 치는 순간! 번쩍 눈을 뜹니다. 그러곤 삿대질을 하며 고개를 흔드는 '헐크업' 발동! 이때부터는 아무리 때려도 아파하지 않고 상대의 펀치를 에너지 삼아 더욱 강해집니다. 이 때 국딩들은 미친 듯이 열광하죠.
입장하고 나서 자기 티셔츠를 북북 찢는 것이 국룰입니다.(팬티는 찢지 않습니다.) 저도 똑딱이 점퍼를 입고 헐크 호건처럼 점퍼의 똑딱이를 두두둑 뜯고는 했습니다. 피니시 기술인 '레그 드롭(허벅지로 목 찍기)'은 지금 보면 정말 평범하지만 그 시절엔 핵폭탄급 위력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레그 드롭'으로 척추에 무리가 많이 가서 키가 5센치 이상 줄었다고 하네요. 이기고 나서 손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경례를 하는 저 포즈는 당시 국딩들이 많이 따라하던 승리 세러모니입니다.
1953년생으로 한창 전성기 시절이, 그가 30대 후반의 나이였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근황 :
2005년 WWE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되었습니다. 작년 향년 7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은퇴 후 여러 구설수와 논란에도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콘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얼티밋 워~리어~~' 라고 외치면, 강렬한 기타와 드럼의 등장 음악과 함께 대기실에서부터 링까지 전력 질주로 뛰어옵니다. 로프를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며 포효하는 것이 그의 시그니처! 형광색 페이스 페인팅과 팔뚝에 묶은 끈이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헐크 호건의 유일한 라이벌로 초등학생들의 인기를 양분했던 전설입니다. 후일담으로 워리어는 신나게 뛰어와서 링에 오르면 게임도 하기 전에 이미 체력이 방전됐다는 소문이...
분장에 가려져 있지만 잘생긴 외모와 균형잡힌 근육질 몸매, 그리고 상대방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마지막 피니쉬 기술이 간지 폭풍입니다.
근황 :
WWE 측과 오랜 불화를 겪었으나 극적으로 화해하며 2014년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헌액식과 레슬매니아 30 무대 직후인 2014년 4월 8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54세의 나이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 예~!" 하는 쉰 목소리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선글라스, 치렁치렁한 프린지 의상. 탑 로프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 엘보우 드롭'은 역대 가장 아름다운 폼을 자랑했습니다.
악역과 선역을 번갈아가며 나왔고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엄청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어쩐지 콩라인이라 국딩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그리고 가장 잘 어울리는 등장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모의 매니저 '미스 엘리자베스'가 마초맨 곁에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결혼했지만 여러 오해로 헤어지고 다시는 재결합하지 못했습니다.
못난 사내놈이 사소한 오해로 일편단심 여친을 나쁜 사람 취급하고, 그를 이용하려는 다른 여자 매니저와 놀아나다가 끝내 여친의 진심을 알고 과거를 뉘우친다는 장장 3년에 걸친 드라마(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지만)가 있었습니다. 짐승들이 맞부딪히는 땀냄새 나는 사각 링의 세계에서, 가슴 뭉클하게 하는 낭만적인 훌륭한 각본이었습니다.
근황 :
2011년 5월, 아내와 함께 차를 운전하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했습니다. 그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2015년에 명예의 전당(HOF)에 사후 헌액되었습니다. (미스 엘리자베스 역시 2003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항상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상대를 쓰러뜨린 후 그 안에서 '데미안'이라는 진짜 거대한 비단뱀을 꺼내 이미 게임에서 져서 쓰러진 상대방 몸 위에 풀어놓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상대에게 뱀을 풀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것이 백미죠. 당시 최고의 피니시 기술인 'DDT(상대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뒤로 넘어지며 정수리를 찍는 기술)'를 시전하면 상대방은 그대로 기절을 하고 맙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선역으로 나중에 '릭 마텔'이라는 향수 뿌리는 캐릭터에게 향수를 맞아 눈이 먼다는 설정이 있었고 그와 대립하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근황 :
오랫동안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 같은 삶을 살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동료 레슬러(DDP)의 눈물겨운 도움으로 극적인 재활에 성공했습니다. 2014년에 명예의 전당(HOF)에 올랐으며, 현재는 AEW 등 다른 단체에서 매니저로 활발히 활동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밀리언 달러맨, 상대의 목을 조르며 조롱하는 얄미운 자본주의 악당의 '밀리언 달러 드림' 기술!을 시전합니다. "하하하하!" 하는 특유의 경박하고 사악한 웃음소리. 온몸을 달러(지폐) 무늬 양복으로 도배하고 다녔고, 챔피언 벨트조차 돈으로 사서 '밀리언 달러 벨트'를 차고 다녔습니다. 쓰러진 상대방의 입에 꾸깃꾸깃한 100달러 지폐를 쑤셔 넣는 모욕적인 세리머니가 일품이었죠. 악역으로 반칙도 서슴지 않았지만 기술이 워낙에 좋고 헐크 호건이나 워리어에게 기술을 먹을 때 정말 찰지게 당해서 호쾌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WWF 입장에서는 연기력 좋고, 얄미운 악역을 자처하며 마지막에는 통쾌하게 져주니 이보다 좋은 레슬러가 있겠나 싶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최고라는 것을 세월이 흘러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근황 :
프로레슬링 은퇴 후 기독교 목사로 변신하여 완전히 갱생(?)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10년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되었으며, 최근 복지 기금 횡령 관련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링 위에서의 캐릭터만큼은 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악역으로 평가받습니다.
상대의 목을 꺾어버리는 그의 치명적인 피니시 기술, '루드 어웨이크닝(Rude Awakening)' 이면 상대방이 기절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쓰러진 상대 위에서 히프를 요염(!)하게 돌리는 것이 압권입니다.
입장할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여기 있는 뚱뚱하고 못생긴 관중들은 조용히 해라! 내가 옷을 벗을 테니!"라며 도발했습니다. 자신의 바지(타이츠) 엉덩이 부분에 상대방의 얼굴을 그려 넣어 굴욕을 주는 얍삽함의 대명사였던 악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이기면 여성을 링 위에 올려서 키스를 하고 키스를 한 여성은 (어찌나 좋았는지) 정신을 잃습니다. 달러맨과 더불어 시간이 지나 부러웠던 캐릭터 중 하나.
근황 :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뒤, 1999년 4월 심부전(심장마비)으로 40세라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여 수많은 팬들을 슬프게 했습니다.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2017년에 비로소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되었습니다.
키 2m 24cm, 체중 230kg의 압도적인 거인. 특별한 기술 없이 그냥 밟고, 깔고 뭉개고, 코너에 몰아놓고 엉덩이로 짓누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압사할 것 같았습니다. 헐크 호건이 이 거대한 앙드레를 들어 올려 바닥에 메다꽂았던 레슬매니아 3의 명장면은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밀리언 달러맨과 한 편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국딩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굉장히 무서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약간 순둥한 표정의 느낌도?
근황 :
평생을 거인증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고통받다가 1993년 1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픔에 빠진 WWF는 그를 기리기 위해 '명예의 전당(HOF)' 제도를 최초로 창설했고, 그가 바로 영광스러운 1993년 제1호 헌액자입니다.
그 외 이름부터 거만한, 재수 없지만 기술만은 최고였던 미스터 퍼펙트(Mr. Perfect), 뻗은 상대에게 체중을 실어 발로 쿵쿵쿵 하여 충격(?)을 주었던 어스퀘이크, 경찰관복 입은 정의의 빅보스맨, 걸프전 당시 악역으로 나왔던 서전슬로터, 그 이후 20년을 넘게 활동한 언더테이커, 바보 형제 부쉬워커스 등의 수많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많았습니다.
그 때 당시 국민학생들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자 사랑하던 영웅이었습니다.
아이큐 점프 같은 만화 잡지의 부록으로 브로마이드를 모으고, 문방구에서 스티커를 사서 필통과 책상에 덕지 덕지 붙이고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1. 전국구 괴담의 주인공 "워리어가 죽었다고?"
90년대 초등학교 교실을 휩쓸었던 역대급 괴담이 있습니다. "얼티밋 워리어가 경기 중 죽었고, 지금 나오는 워리어는 닮은 사람을 구해온 가짜다!"라는 소문이었죠. 워리어의 근육량이 줄어들고 머리색이 조금 바뀌어서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당시 초딩들은 이 소문을 기정사실로 믿고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2. WWF가 WWE로 이름이 바뀐 황당한 이유
우리의 기억 속엔 영원히 'WWF'지만, 지금은 'WWE'로 불립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약자 WWF)이 제기한 상표권 소송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평화를 지키는 판다 로고의 단체와, 피 터지게 싸우는 프로레슬링 단체의 이름이 같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3. 달러맨의 극한 직업 (자본주의의 노예)
'밀리언 달러맨' 테드 디비아시는 링 위에서 돈자랑을 하는 기믹을 유지하기 위해, WWF 회장으로부터 "실제 사생활에서도 백만장자처럼 행동하라"는 엄명을 받았습니다. 무조건 비행기 1등석만 타고, 식당에 가면 팬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100달러짜리 팁을 뿌려야 했죠.
(물론 팁 비용은 회사에서 전액 지원해 줬다고 합니다.)
※ 이미지 출처
① 헐크호건, 워리어 :
https://www.thesportster.com/wrestling/finishing-moves-looked-weak-won-often/
② 헐크 세러모니 :
https://www.theatlantic.com/culture/archive/2025/07/hulk-hogan-obituary/683664/
③ 마초맨 : https://www.accelerator3359.com/Wrestling/moves/savage.html
④ 달러맨 : https://www.fmkorea.com/607148801
⑤ 그 외 기타 이미지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