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땅을 샀어야 했어...
최근 <돈>이라는 영화가 개봉 4일만에 100만을 돌파했습니다. 금융권에서의 개인의 탐욕을 그린 영화가 <돈>이라면 강남땅을 두고 인간의 밑바닥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영화가 바로 <강남 1970> 입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도 있겠죠. 혹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첫사랑과 후회 없는 더 깊은 사랑을 더 나눌 수도 있겠죠. 하지만 최종병기는 다른 건 다 때려치우고 강남에 땅을 사겠습니다. 그러면 매일 출근 안 해도 될텐데...가 아니고 팀장님 사랑합니다. -_-
상기한 것처럼 강남의 개발이 시작되던 197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가난한 두 남자 종대와 용기가 이권 다툼에 뛰어 들면서 생기는 우정과 배신, 사랑과 폭력을 그린 느와르 영화입니다. 매력적인 이민호와 김래원 두 주인공의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존재감이 영화를 내내 리드합니다. 유하 감독의 강남 3부작의 마지막이니만큼 과격한 액션을 잘 연출한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 시절 한국의 탐욕과 폭력성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영화와 약 2% 관련이 있는 이야기.
프랑스는 2차 대전 당시 독일로부터 4년간 점령 당했으며 종전 후 피의 숙청을 단행하여 나치 협력자 99만명을 체포하였고 이중 6천 7백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대한민국은 효율적인 국가 기틀을 세운다는 미명하에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심판하지 못하고 과거 청산에 실패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상황에 따라 내 몸을 위해 국가를 배반하고 제 민족의 고통을 활용하는 자들의 영달을 눈 감는 선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1950년 무려 2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육이오 전쟁은 좁은 국토에서 3년간 전쟁을 치루며 치열하게 빼앗고 빼앗기는 국지적인 전투가 반복되었습니다. 일단 빼앗긴 지역을 되찾아오면 상대에게 협력/복종했다는 이유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는 민중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 어느 날엔 태극기를 휘날리다가 며칠 후에는 다시 인민군 만세를 외쳐야 했습니다. 기회주의자가 아니고서는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1.
당장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
부모도 없이 거지꼴 넝마주이로 살던 종대(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 분)은 살던 시에서 판자집을 강제 철거하여 거리에 나앉게 됩니다. 본 영화에서는 수원시로 표현됩니다.
1960년대 서울 종로의 청계천은 수많은 판자촌에 도시 빈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략 30%가 무허가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 노동자가 처한 비참한 노동환경에 전태일은 분신했지만 당시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증가했던 이유는 농촌의 삶은 더욱 더 곤궁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정부는 눈에 보이는 판자촌과 도시 빈민 처리를 위해서 판자촌을 모두 철거하고 13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시)로 강제이주시킵니다. 황무지였던 광주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몰린 사람들은 '도저히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땅투기꾼까지 몰려들어 이주된 사람들이 자신의 집도 장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공권력으로 진압했던 사건이 '광주 대단지 사건'입니다.
2.
서의원에게 대충 들었겠지만 전당대회만 확실하게 때려 부셔.
정당성 없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영구 집권을 노리는 정권은 선거에 이기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에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당시 야당 국회의원을 돈으로 매수하기도 했으며 야당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학생들을 국가 보안 사건으로 조작하여 그들을 간첩으로 몰아 체포하고 고문하였습니다. <강남 1970>에서는 여당의 국회의원이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야당의 전당대회를 방해하는데 이것을 계기로 종대와 용기는 정치깡패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3.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한강교 밑을~♬
60년대 서울의 인구 증가율은 연 평균 8.2%였습니다. 이것은 8년마다 인구가 두 배가 되는 큰 증가율입니다. 이에 정부의 대응책은 서울을 넓히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강남의 개발입니다. 서울 외 지역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위치를 조금 자세히 설명 드립니다.
①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의 완공
현재 용산구(이태원 있는)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가로수길로 유명한)을 연결하는 한남대교(당시 명칭 제 3 한강교)가 69년 완공됩니다. 1970년 중구(서울 시청,남대문 위치) 명동과 한남동을 연결하고 장충동(족발로 유명하며 동대문과 연결됩니다.)과 한남동을 연결하는 남산 1,2터널이 완공되면서 서울 중심부와 강남이 연결되게 됩니다. 아마 영화에서 나오는 한남대교를 보시면 지금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생소하실 겁니다.
그리고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 고속도로를 군사 작전을 방불케하는 공사로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만에 완공(1970년)하게 됩니다. 공기를 1년 앞당기기 위해 무리한 건설로 무려 77명의 사망자가 나왔을 정도로 무리한 공사였습니다. 이렇게 서울 중구에서 접근성이 용이해지고,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가 연결되며 본격적인 강남 개발이 시작됩니다.
② 강남 스타일?
강남은 본래 서울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구시가지 영등포의 동쪽이라 하여 영동이라 불렸습니다. 강남 일대는 달구지 한 대 지나기도 어려운 좁은 길에 초라한 초가집 몇 채 있던 한없이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60년대 인구가 작아 정식 행정기관에 둘 수도 없었고 강남 압구정동 지역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기만 하면 침수가 일어나 땅이 질어 다니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군에 편입되어 있었습니다. 1975년 성동구(으아! 김흥국 59년 왕십리)에서 강남구가 분리되고 88년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다시 분리됩니다.
강남 3구 중 나머지 하나 송파구,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롯데월드의 송파구 잠실은 본래 한강 본류였고 이를 메워 육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지반이 약해 제 2 롯데월드 건립 이후 싱크홀 등을 많은 이들이 걱정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1988년 강동구에서 송파구로 분리되었습니다. 모두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③ 땅값 상승의 시작
비교를 위해 60년대 말 강북의 고급 주택가 중 신당동(떡볶이로 유명)/장충동(박근혜 대통령이 어린시절을 보낸)은 평당 땅 가격이 3만원이었고 압구정동과 신사동의 평당 가격은 400원(대략 신당동의 1/80)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가격 비교를 위해 짜장면이 출동하면, 짜장면 한 그릇 가격 40원이었다고 합니다. 짜장면 10그릇이면 땅 한 평 살 수 있었던 것이죠. 그 후 15년 동안 강북 땅값이 10배 뛰는 동안 강남은 2,000배가 뜁니다. 대략 40여년이 지난 지금 강남의 땅값은 약 16만배 정도가 올랐다고 합니다. 짜장면은 100배가 오르네요.
④ 강남개발의 정경 유착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71년 당시 야당 대표였던 40대 김대중과의 대선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 선거에 이겨야만 72년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선거의 승리에 사활을 겁니다. 그래서 정부는 대선 자금 마련을 위해 강남 개발 투기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당시 정보, 수사를 위한 행정기관인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가 본연의 기능보다는 정권을 위한 공작 정치를 주업무로 하고 있었는데, 중앙정보부 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할 정도로 그 권력이 대단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중앙정보부 김부장과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실세는 서울 지도에서 매직으로 대강 직직 그어 구획을 나눈 후 본격적인 토지 매입을 시작합니다. 공화당에서 나온 정치 자금으로 서울시 관계자 등이 강남 일대의 빈 땅을 사 모은 후 서울시는 시기에 맞춰서 1970년 남서울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땅값이 몇 백 배로 뛰어오릅니다.
시세차익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대선자금이 청와대에 상납되고 이런 식으로 대선 정치 자금을 부동산 투기로 충당합니다. 이에 맞추어 건설사들 또한 정권에 정치자금을 상납하고 투기붐을 이용하여 많은 돈을 벌고 훗날 재벌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것이 '과거로 돌아가면 시골이었던 똥값의 강남 땅을 살텐데' 하는 이는 많아도 정작 당시 돈을 번 서민은 별로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강남 개발된 80년대 이후로도 투기는 계속됩니다.
4. 돈과 땅 그리고 탐욕과 폭력
여기까지 보셨다면 이제 영화의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1970년대 땅과 돈에 취해 타락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강남을 배경으로 영화는 낭자하는 폭력과 선명한 피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넝마주이로 함께 껴안고 잘 작은 공간이 필요했던 그들은 이제 돈과 땅의 노예가 되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잔인한 탐욕의 종점으로 달려갑니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도 결국엔 이용 당한 후 폐기 처리되어 파멸하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대한민국은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심판하지 못하고 과거 청산에 실패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제 민족의 고통을 활용하는 자들의 영달을 눈 감는 선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1950년 무려 200만명의 사망자를 낸 625 전쟁으로 주변 상황에 눈치보고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아가는 기회주의자가 아니고서는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강남 개발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투기로 시작된 이상한 개발 계획으로 정당한 땀의 댓가가 아닌 눈치와 정보로 땅을 사고 파는 것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풍조가 사회를 뒤덮습니다.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남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
1970년대의 독재 정권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함께 강남 개발로 한국 자본주의를 천민화시켰습니다. 사회 지도층은 권력을 위해서 돈을 쓰고, 쓸 돈을 만들기 위해 권력을 이용합니다. 이 상황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돈과 권력 앞에서 도덕적 가치와 사회 정의는 애써 눈감습니다. 고고하게 살면 생존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정의를 말하는 사람을 속으로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그렇게 집값 떨어진다며 아파트 근처 복지관의 건립을 반대하며 시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남 개발로 촉발된 부동산 투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수십년간 학습되고 각인된 우리의 팔 다리를 묶고 있는 끊어지지 않는 끈질긴 굴레와 같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한 서민의 몸부림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요? 질곡 많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기회주의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 저 또한 위선으로 포장하고 적당히 이기적으로 때로는 영악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역사는 꾸준히 전진할 것이고 우리는 행복의 길로 조금씩 다가갈 것이니까요. 2차대전 종전 후 독립했던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 아프리카 국가,남미 국가들 가운데 대한민국보다 발전된 나라는 없다는 자부심을 가져봅시다.
<끝>
<강남 1970 - 탐욕과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written by 최종병기, ⓒ 최종병기
병맛나는 삼류 쌈마이 글,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지만 출처는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 자료 :
북한이 강남 개발 일등 공신 … 계획과는 다른 결과, 그게 인생이더라
- 중앙일보 2014.1.22
'강남보수'는 군사개발 독재의 산물
- 주간경향 2010.6.29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대편 3권, 1970년대 편 1권
- 강준만
강남(서울)
- 위키백과사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