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학교 괴담(上)

세종대왕이랑 이순신 장군이 싸우면 누가 이겨?

by 최종병기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비 오는 날, 잿빛 구름 때문에 대낮인데도 학교 교실은 초저녁처럼 어둑어둑했다. 왁스 칠을 하던 걸레 냄새와 비 냄새가 묘하게 섞인 퀴퀴한 공기 속에서, 청소 시간은 끝나 친구들은 모두 집에 갔지만 원보, 현호, 동진, 양희 등 학원에 갈 시간이 남은 친구들은 교실 중간 난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난로에 손을 쬐고 있었다. 날이 으스스해서인지 우리가 늘 듣던 미스터리, ‘우리 학교 불가사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통에서 새어나온매운 연기, 난로와 먼 자리는 발 시려웠어요.





1. 괴담의 시작: "우리 학교 터가 원래..."


친구들 다섯이 모이면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현호였다. 공부는 관심이 없지만 잡지식과 게임 정보만큼은 박사급인 녀석이 목소리를 깔았다.


"야, 니네 그거 아냐? 우리 학교 짓기 전에 여기가 뭐였는지."


우리 학교에서 덩치가 가장 큰, 하지만 여리고 소심한 양희가 마른침을 삼켰다.

"뭐... 뭔데?"


대단한 비밀을 이야기하는 듯이 목소리를 깔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여기... 원래 공동묘지였대."

"에이~ 또 그 소리냐?"


전교 부회장이자 늘 침착하고 논리적인 동진이가 그럴리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야, 전국의 국민학교가 다 공동묘지면 우리나라 그냥 무덤 천지였게? 사람이 살 땅이 있긴 하냐?"


나도 거들었다. 우리 학교는 비만 오면 운동장이 물바다가 되는 상습 침수 구역이었다.

"맞아. 그리고 공동묘지는 원래 산에 있잖아. 묘지는 명당에 쓰는 거 아냐? 우리 학교 운동장은 비만 오면 뻘밭인데? 조상님들도 이런 축축한 데는 싫어하실걸?"


하지만 현호는 지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더 크게 뜨며 반박했다.

"멍청한 놈들아. 그러니까 귀신들이 화가 난 거야! 전설의 고향도 안 봤어?"


그 시절 가장 무서웠던 공포 호러 드라마


"뭐?"


"축축한 땅에 묻힌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 위에 무거운 콘크리트 학교를 지어서 짓눌러 놨잖아! 너 같음 매일 같이 무덤을 누르고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맨날 뛰어다니는데 시끄럽고 답답하지 않겠냐? 그래서 귀신들이 밤마다 나와서 시끄럽다고 나오는 거라고!"


그럴싸했다. 공부는 못하지만 그런 논리로는 전교 부회장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원보가 큰 발견을 했다는 듯 눈이 동그래지며 말했다.


"그... 그래서 비 오는 날 밤에 운동장 파보면... 머리카락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거야...?"

그들도 우리와 함께 숨쉬며 웃고 울던 사람들이었어.




2. 동상들의 밤: 춤추는 유관순과 찢어진 입


학교 터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자, 이야기는 운동장에 서 있는 동상들로 옮겨갔다.

"야, 니네 그거 아냐? 운동장에 있는 '책 읽는 소녀상' 말이야."


현호가 다시 운을 뗐다.

"그 소녀상이... 밤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긴대. 그러다가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날! 학교가 와르르 무너지거나, 그걸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대!"


"야~ 으슬으슬하다."


양희가 쓴 한약을 먹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질 수 없다는 듯 동진이가 나섰다.


"그건 아무것도 아냐. 밤 12시 땡! 하면 운동장에서 전쟁 나는 거 알아? 이순신 장군 동상이랑 세종대왕 동상이 살아나서 싸운대."

"에이, 말도 안 돼."

"진짜라니까? 거의 둘이 비기는데 이순신 장군이 이기면 다음 날 학교에 불나고, 세종대왕이 이기면 물난리 나는 거야."

"이순신 장군은 칼 휘두르고, 세종대왕은 책으로 막기밖에 더할까? 둘이 싸움이 되는 거야?"


대부분의 국민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동상들


그때, 내 가장 친한 친구 원보가 심각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평소엔 둥글둥글하고 착한 녀석인데 오늘따라 비장했다.


"난 이승복 동상이 제일 무섭단 말이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했다지? 밤 12시만 되면 이승복 동상이 '콩사탕이 싫어요!' 라고 외치고 입이 귀 밑까지 쭈욱 찢어진대... 그러고 눈에서 피눈물을 흘린다지?"




3. 겁쟁이들의 도원결의


"밤 12시에 입에 칼을 물고 학교 거울을 보면 미래의 와이프가 보인대!"


나는 부끄럽게 말했고 모든 이가 교실 뒤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현호가 말했다.


"우리가 6개까지 이야기했지? 불가사의 7개 중에서 마지막 7번째는 뭔지조차 알 수 없어, 왜냐하면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죽기 때문이야!"

"히익!!! 정말?"


동진이 조용히 읖조리며 '이순신, 책 읽는 소녀, 이승복, 과학실, 학교 계단, 화장실...' 손가락으로 하나둘 세었다. 놀래는 양희 옆에서 동진이가 손가락을 펴보이며 말했다.

"야! 근데 우리가 이야기한 것만 열개는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잘난척 하며 말했다.

"야, 다 뻥이야. 동상이 어떻게 움직이냐? 동상은 정말 단단한 금속 아닌가?"


원보가 갑자기 나를 툭 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통통한 볼살에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야, 오늘 밤에 확인해볼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내가 왜?"

"쫄았냐? 난 오늘 가서 이순신 장군님이랑 악수하고 올 건데."


동진이는 양희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야, 양희랑 나는 못 가겠다. 우리 둘은 집이 멀어서 엄마가 밤 늦게 나가면 혼낸단 말이지."


양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보의 도발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양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동진이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11세)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가슴을 폈다.


"누... 누가 쫄았대? 가! 가면 될 거 아냐! 오늘 밤 12시, 학교 정문 앞!"

"오올~"


친구들의 환호 속에, 그렇게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과연 그날 밤, 원보와 나는 공동묘지(추정) 위에 지어진 학교의 동상들을 만날 수 있을까?





� 그때 그 시절 TMI : 우리를 떨게 했던 네임드 귀신들


1. 왜 학교는 항상 '공동묘지'였을까?


90년대 모든 학교의 국룰이었죠. "우리 학교 터가 원래 공동묘지였다." 사실 이게 아주 없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70~8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날 때, 좋은 평지는 이미 집이나 상가들이 차지하고 있었죠. 그래서 학교 부지로 헐값에 매입하기 쉬운 야산이나 변두리 땅을 많이 썼는데, 실제로 그 과정에서 무연고 묘지들이 발견되어 이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른들이 무심코 한 "여기 산소 자리였는데~"라는 말이 아이들의 귀를 거쳐 "어젯밤 당직 선생님이 귀신을 봤대"로 와전된 경우가 많았죠.


2. 동상들은 왜 밤마다 움직였나?


밤마다 싸운다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책 넘기는 '독서상', 입 찢어지는 '이승복 어린이'. 이 동상들은 1970년대 정부의 '애국선열 조상 건립' 지침에 따라 전국의 모든 학교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다시피 했습니다. 똑같은 동상이 전국의 국민학교에 깔리니 부산에서 생긴 소문이 서울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퍼질 수 있었던 거죠.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는데 소문 전파 속도는 5G급이었습니다.)


3.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재래식 화장실 변기 밑에서 손이 나와 휴지 색깔을 고르라고 한다는 괴담. 빨간 휴지는 죽음, 파란 휴지는 질식... 도망치거나 "노란 휴지"라고 답해야 산다는 파해법까지 진지하게 공유되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① 국민학교 교실 난로 :
https://www.threads.com/@rararamidad/post/DE_SuCqS7TS

② 무덤 : 구글 이미지

③ 이승복, 책읽는 소녀 동상 : 직접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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