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장례식 (4/4)

매장, 통로의 폐쇄

by 최종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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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도현의 프로필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내 손가락이 다시 그 프로필로 돌아왔다. 사람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손이 기억하는 건 마음보다 오래 간다.

오른쪽 위 점 세 개를 눌렀다.


‘친구 차단’

‘친구 삭제’


오늘은 이상하게 차단이 더 쉬워 보였다. 차단은 내 마음을 보호하고 더욱이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굳히는 방식이었다. 그 단단함이 무서웠다. 굳어버린 건 다시 풀기 어렵다. 나는 굳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이 ‘차단’ 위에 잠깐 머물렀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친구 삭제’.


확인창이 떴다. 너무 친절한 문장이었다. 마치 “정말로 보내줄 거예요?”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확인을 눌렀다. 도현의 이름이 목록에서 사라졌다. 도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도현을 부르는 가장 쉬운 길이 사라진 것이다. 그 사실이 허망해서 잠깐 멍하니 있었다. 사람 하나를 보내는 데 확인창 하나면 충분하다니.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부엌으로 갔다. 서랍을 열자 상비약 상자가 있었다.

플라스틱 뚜껑 위에 포스트잇 하나. 보자마자 읽기도 전에 알 수 있는 익숙한 글씨.


‘아플 땐 이거 먼저. 약은 식후에.’


나는 상자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나는 그걸 몇 번이나 꺼내 썼을까. 진통제가 필요했던 날들, 밴드가 필요했던 날들, ‘아프다’는 말이 핑계가 되어도 되는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상자를 열었고 포스트잇의 글씨를 봤고, 결국 도현을 떠올렸다. 이건 추억이 아니라 통로였다.


나는 쓰레기 봉투를 벌리고 벌려진 쓰레기 봉투 위에 상자를 들고 있었다. 버리면 내가 너무 매정해지는 것 같았고 버리지 않으면 내가 계속 아플 것 같았다. 둘 다 싫어서 나는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을 거니까.”


나는 상자째 봉투 안으로 떨어뜨렸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내 안을 무겁게 두드리고 지나갔다. 봉투 끈을 묶으려다가 손이 미끄러졌다. 다시 묶었다. 매듭은 어설펐다. 그래도 됐다.


미련은 남아 있었다. 혼란도 남아 있었다. 대신 나는 오늘, 내가 다시 의지할 수 있는 길 하나를 내 손으로 지웠다. 누군가를 지운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는 방식을.


나는 손을 씻고 물을 한 컵 마셨다. 물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게, 오늘은 다행이었다.

내일은 망원역 2번 출구 계단을 오르며 또 생각하겠지. 어쩌면 도현을. 어쩌면 나를.


<끝>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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