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장례식 (3/4)

조문, 비의 문턱

by 최종병기
1편 : https://brunch.co.kr/@killm3/79
2편 : https://brunch.co.kr/@killm3/80




비가 오는 날을 일부러 고른 건 아니었다. 그냥 그날이 비가 왔다. 또는 내 마음이 비를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망원시장 골목은 밤이면 더 좁아 보였다. 젖은 종이상자들이 바닥에 눌려 있었고, 생선가게의 비린 냄새가 꺼진 간판 아래서도 남아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 그 냄새는 내게 ‘계속 살아야 한다’는 명령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더 서러웠다.


나는 도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은 너무 직접적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것도, 문을 두드리는 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문 앞에 서서 내 손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비가 눈썹을 타고 흘러내려 눈이 따가웠다.


내 장례식은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화려한 의식은 아니었다. 제물을 차릴 여유도 없었다. 내가 가져온 건 젖은 머리카락과 젖은 숨, 그리고 내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습관 하나뿐이었다.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나는 그 공기를 맡는 순간 울컥했다. 사람은 언제나 따뜻한 쪽으로 무너진다. 도현은 맨발이었다. 발등이 건조했다. 그게 나를 더 미치게 했다. 나는 이렇게 젖어 있고, 너는 이렇게 말라 있구나. 그 사실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갑자기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왔어.”


그 말은 화가 난 말이 아니었다. 그냥… 문턱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너는 어디까지 들어올 생각이냐고 묻는.


“나….” 나는 한 번 숨을 삼켰다. 목구멍이 비와 함께 부어 있는 것 같았다.

“나, 너를 사랑해서 온 게 아니야.”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말 같은 진실이었다. 내 마음은 아직 복잡했지만, 오늘은 정확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내 습관이….” 나는 손을 꽉 쥐었다. 젖은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났을 것이다.


“내 습관이 다 너였어. 그걸 못 이겨서 왔어.”


도현은 한참을 나를 보다가,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내 어깨가 조금 덜 젖었다. 그 사소한 움직임이 더 잔인했다. 너는 여전히 나를 돌보지만, 나를 안으로 들이지는 않을 거라는 방식의 친절. 그리고 그는 아주 조용히 단조롭게 말했다.


“나를 떠올려도 좋아. 하지만 나 없이 네 삶을 살아가길 바라.”


그리고,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해명도 없고 위로도 없었다. 문턱에 서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말을 주면 그 말이 목줄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나는 그의 짧은 문장을 가슴에 안고 돌아섰다. 비가 다시 내 얼굴을 때렸다. 방금까지 따뜻했던 공기가 목덜미에서 빠져나가자,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싫어졌다. 그래도 나는 걸었다. 망원역 방향으로. 집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무리로 아무 데로나.


그날 밤 이후로 나는 결심했다. 추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통로를 지우겠다고. 내가 그를 쉽게 부를 수 있는 길부터 없애겠다고.


<4편에서 계속>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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