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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발트 May 30. 2020

친구따라 강남가던 시절

미술 그리고 부모님의 반대

 바야흐로 밀레니엄 시대의 막이 오르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 미술학원 등록할거야."


 친구는 내게 말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친구의 한마디에 나는 무척 놀랐다. 그 애와는 같은 반 단짝친구로 단과학원과 종합학원을 같이 다니는 사이였다. 그동안 전혀 언급이 없었던터라 굉장히 의아했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나는 샘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오히려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은 나였다. 한주에 한번 있는 미술시간마다 실력을 뽐내는 것도 나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미술은 가난하다'라는 시선으로 집에서는 나의 장래희망을 반대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는 미술학원을 등록한 것이다. 어린 나의 마음에 살짝 스크래치가 났지만 친구의 결심을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매순간 흔들렸다. 나도 하고 싶었다. 미술입시의 열차에 타야만 했다. 좋은 학교를 가기위해 꽤 괜찮은 미술학원을 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입시란 그런 것이었다. 그 당시 미술입시의 메카는 단연 홍대앞이었으나, 친구는 학교와 가까운 거리의 돈암동으로 학원을 선택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친구는 자신과 같은 학원을 다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은 채 미술의 열정을 따라 친구에게 이끌려 상담까지 받았다.


 그렇게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부모님께 고백 할 날만 기다렸다. 결심을 끝낸 그 날, 나는 커다란 폭탄을 지닌 심정으로 거실에 나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저... 미술학원 가고 싶어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불켜진 거실과 떠들어대는 TV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부모님께서는 승낙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는 나의 결심을 반대했다. 더불어 불같은 성격으로 화를 내시며 과거 나의 행동들을 문제 삼으셨다. 그렇다. 나의 십대는 부족한 인내심으로 점철 된 나날들이었다. 무엇이든지 관심이 생기면 팍 식어버리기 일쑤였고 모든 학원에서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솔직히 친구따라 강남가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나는 그렇게 끈기없는 아이로 나도 모르는 새 낙인이 찍혔던 것이다. 누군가는 어린나이에 그 정도는 흔한 일 아닌가? 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집의 제일 큰 어르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하... 나는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마치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소리쳤다. 어르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했다. 제발, 보내주세요. 이게 이렇게 할 일인가? 싶겠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반대는 나의 마음에 더 큰 불꽃을 일으켰다.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반대를 하셨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유가 오롯이 '나'라는 존재 때문인지 그 외에 말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설득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나는 밝게 웃던 친구를 떠올리며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나는 안되는 것인가?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눈으로 햇살을 맞이했다. 세상은 평온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차게 식어버렸다.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도 슬퍼보였다. 위로를 하려고 애쓰시는 모습에 나도 기운을 차리고 엄마와 함께 외출을 했다. 넓은 하늘 대신 그늘진 땅바닥을 보고 걷고 있었다. 중간정도 지났을까, 바닥에 버려진 책받침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주워들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제일 큰 미술학원의 홍보책받침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서 나와? 







 웃기게도 나의 이야기는 책받침의 발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책받침에 있는 전화번호로 엄마는 그 미술학원에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원장님과 면담을 나누게 되었고, 그 이후로 미대입시를 준비하는 예비반에 배정되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모르는 새에 엄마와 아빠가 무슨 대화라도 나눈 것이었을까. 혹은 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본 엄마가 아빠를 설득한 것이었을까. 비록 친구따라 같은 미술학원을 가진 못했지만 여러모로 편의를 고려해 집 근처로 등록을 하게 되었고, 2년이 넘는 시간을 하얗게 불태워 대입시험을 치뤘다. 분명한 것은 나는 미술에서만큼은 뚜렷한 재능이 있었고, 십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열정을 내뿜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나는 친구의 자극으로 숨어있는 승부욕을 꺼내게 되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기에 스스로를 믿고 뒤쳐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 1 여름방학부터 시작된 미술공부로 내 인생은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나는 비록 가난한 예술가가 될 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어느정도 세월이 흘렀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미술을 배우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입시를 치루기 위해서는 남들과 똑같이 정해진 대로 걸어가야만 하고 자신의 개성을 죽인 채 그저 기술적으로 잘 그리는 것에만 집중을 해야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다면 또 이내 개성을 살리기 위해 그동안 배웠던 방식을 버려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답은 정해진 것이 없고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 어찌보면 시작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의 마음가짐, '초심'은 언제나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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