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271일차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어언 270일이 지났다. 이제 복직까지 3개월이 채 안 남은 듯하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며 내 인생에서 쉼표를 주려고 했다. 쉼표는 주었는데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아이들 하원을 하고 아파트 내 놀이터로 놀러 갔다. 아이들 어린이집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친구들의 부모도 모여 있었다. 사랑이의 친구 중 소예라는 친구가 있다. 소예의 아빠가 다리를 다쳐서 몇 개월 동안 보지 못했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왔다. 다리가 다쳤던 사람이 맞는지 아이들과 뛰며 신나게 놀아주었다. 소예의 엄마는 소예 아빠가 또 다시 다리를 다칠까봐 안절부절 못했다.
바턴터치를 했다. 소예 아빠보고 쉬라고 한 뒤 아이들과 잡기 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놀이터를 뛰기 시작했다. 잡힐 것 같으면 얼음이라며 멈추고 깎두기라며 잡기 말라고 했다. 아이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추워 아이들의 코에서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집에 슬슬 들어가자고 해도 더 놀고 싶다며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엄마 중 한 명이 물었다.
“복직 이제 얼마나 남으셨어요?”
“아.. 한 2, 3개월이요?”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이요? 음, 더 육아휴직 하고 싶죠, 하하, 지금은 뭔가 세상에서 약간 단절된 느낌이에요”
“나도 세상에서 단절되고 싶다”
옆에 있던 소예 아빠가 이야기 했다.
“휴직을 하면 복직을 하고 싶고, 막상 복직을 하면 다시 휴직을 하고 싶고”
“맞아요”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이 휴직을 하지는 않는다.
복직 전과 후 무엇이 달라졌나요?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첫째, 요리 실력이 늘어났어요
휴직 전에는 미역국 정도만 가족 생일에 한 번씩 끓일 정도였다. 지금은 카레, 닭날개 볶음, 돼지고기 수육, 소고기무국, 된장국, 김치찌개, 오뎅국, 소세지 야채볶음, 지삼선, 등갈비 등의 여러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엄청 다양한 메뉴는 아니라 금세 밑천이 바닥이 나긴 하다.
둘째, 글 쓰는 삶을 살고 있어요
육아휴직을 하면서 시작한 글쓰기, 글쓰기 강의를 듣게 되면서 나의 책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간 글을 쓰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면서 출판 계약을 했고, 아직 책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든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에도 작가 신청을 해서 작가가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일상을 적고 블로그와 카페,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요새는 글을 쓰지 않으면 뭔가 할 일을 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 거의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이제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셋째, 가족과의 관계가 끈끈해 졌어요.
육아휴직을 하면서 처음에는 오히려 갈등이 생겼다. 부부간 서로의 역할에 대한 원망,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들이 터지면서 위기 아닌 위기를 겪기도 했다. 아이들과도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티격태격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러려고 내가 육아휴직을 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같은 말에도 쉽게 화를 내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갈등이 표출이 되어도 금세 가라앉는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 마디로 끈끈해졌다. 아이들과는 여전히 티격태격하지만 미울 때보다 예쁠 때가 훨씬 많아졌다.
아직 나에게는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시간은 천금 같은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오히려 좀 더 나에게로, 가족에게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