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277일차
우리가 어렸을 적, 부모님들에게 한 번도 체벌을 받지 않은 아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예전에는 말을 듣지 않으면 맴매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체벌이 있었다. 요새는 체벌을 하면 가정에서도 아동학대도 처벌이 되고, 학교에서도 체벌은 금지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또 윤리적으로도 체벌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며칠 전 유튜브 영상에서 오은영 선생님이 나와 한 말이 있었다. 자신도 아이들 키우는데 있어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을 드러낸 부분은 있지만, 단 한 번도 체벌을 하면서 키우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말을 해줘도 듣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게스트가 물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천 번이고 만 번이라도 알아듣게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사랑으로 대해야 하며 폭력은 물리적, 언어적으로도 해서는 안 된다 했다. 아이기 때문에 더 알아듣게 말로 해야 되며, 끝없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하셨다.
영상을 보고 난 후, 난 과연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알아듣게 천 번, 만 번 할 수 있는 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마 아이들에게 몇 번 얘기해서 듣지 않으면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결국 화가 표출이 될 것이다.
그동안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울 정도다. 지금도 특히 등원시간에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나서 아이들을 다그치고 혼내고 후회하는 일이 반복이 된다.
2021년 11월 8일 저녁, 저녁밥을 먹고 아이들을 씻긴 후 영어 책을 4권 읽어 주었다. 책을 보고 난 뒤 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먼저 사랑이가 보고 싶어 하는 영상을 보고 행복이 영상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랑이가 자기 것을 다 보고 난 뒤 행복이의 영상을 보려고 하자 떼를 쓰기 시작했다. 또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상황, 영상을 보여줄 때마다 자제를 하지 못하고 우는 아이,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마음을 꾹 누르고 입술을 다물었다.
“사랑아, 우리 약속했자나 그지?”
“사랑이가 보고 싶어 한 거 보고 행복이 것 보기로”
“사랑이가 영상을 계속 보고 싶으면 룰을 지켜야 해, 어린이 집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지키지 않으면 영상을 볼 수 없어”
사랑이는 처음에는 알아듣는 듯 했지만 다시 몇 번 눈물을 흘렸고, 침대에 누워서도 자기 직전까지 훌쩍거렸다.
3살 때나 지금이나 영상을 볼 때 주변이 보이지 않고 떼를 쓰는 버릇은 지금도 거의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말해줘야 한다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알아듣게 만 번이 아니라 백 만 번이라도 해야 합니다.’ 귀에서 오은영 선생님이 말을 해주는 듯하다.
육아는 끝없는 인내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내가 감정이 동요되어 같이 화내면 마음이 더 언짢다. 단호한 말투지만 따뜻한 눈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렇게 써 놓고도 아침에 등원시킬 때 또 버럭 할 상황이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절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항상 변수다.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모른다.
문제는 나다. 모든 것을 아이 탓으로만 돌리면 안 된다. 영상을 보여주는 것도 내 선택이요, 등원을 시키면서 간식을 줘서 등원시간을 촉박하게 만든 것도 내 탓이다.
따뜻한 말, 사랑스러운 눈길, 칭찬의 말과 행동, 아이는 그것을 먹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