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이 우주의 모든 질서가 음양(陰陽)으로 노나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것이 음양이 없지마는 그 없는 자리에서 음양이 벌어지고, 그 음양이 팔괘(八卦)로, 팔괘에서 24괘, 24괘에서 360도로 이렇게 해서 온 세계가 벌어지고, 그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과 생주이멸이 벌어져 가지고, 그것을 가리켜서 윤회(輪廻)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해졌다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 또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또 얼마 동안 가다가 또 가난해지고 이렇습니다. 한 번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마는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또 차츰차츰 또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면 큰일 날 텐데 또 차츰차츰 일어나기 시작하면은 국중(國中)에 거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에 일생 동안 그 부귀를 누리기도 하고 이 대, 삼 대 가기도 하고, 십 대를 가기도 하고, 당신 일대에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말년에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가지인데,
이 일 년에 24계절이 돌아가는 것, 그것을 보고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그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한 물건’의 발현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한 물건’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진여자성의 그 자리에서 파도가 일어나 가지고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이 우주 삼라만상의 두두물물(頭頭物物)인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자기 마음이 바르고,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하늘을 봐도 희망에 넘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도 희망에 넘치고, 가을에 단풍이 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슬퍼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고독하고, 자기 마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자기 마음이 서글픈 사람은 그 달, 밝고 뚜렷한 가을의 그 고운 달을 보고도 눈물이 주루루 한숨이 푹 쉬어지고, 그 곱게 곱게 핀 꽃을 보고도 한숨을 쉬게 되고, 어떠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 마음과 이 우주 법계에 삼라만상과 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에 자기의 마음이 보인 것이 바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요, 귀도 들을 수 있는 것들이요, 코로 맡을 수 있는 것들이요, 입으로 맛볼 수 있는 것들이요, 몸뚱이로 촉감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그 사람은 무루복(無漏福)을 닦는 것이 된다. 무루복을 닦아야 영원히 타락이 없는 것이다.
유주상, 내가 누구에게 보시를 하거나, 부처님께 시주를 하거나, 어떠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희사를 하거나, 이것이 다 보시에 들어갑니다마는,
보시를 하고서 ‘내가 이러한 보시를 했다, 이러한 희사를 했다, 이러한 시주를 했다’고 스스로 마음에 그러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장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남에게 자랑을 하고 뽐내고 으스대고 하는 것은, 유주상 보시, 유루복 밖에는 되지 않는다.
우리가 복을 지으면 그 복의 차이에 따라서 천당에 올라가게 됩니다. 아주 복을 많이 짓게 되면 아무 괴로움이 없는 천당에 태어나는데, 그 천당에 태어나면 영원히 천당에서 살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누리고 나면 지상으로 떨어지거나, 또는 축생이 되거나, 또는 그 밖의 악도에 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야만 그 무주상 보시를 할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그 말씀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1초, 1초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도달을 해야 할 마지막 죽음의 시간이 우리의 목구녁에서 숨이 딱! 끊어질 그 시간이 1초, 1초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1초, 1초 지내가는 그 시간을 어찌 등한히 지낼 수가 있느냐 이 말씀입니다.
그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그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진실로 1초, 1초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1976년 12월 22일 인천 용화선원 송담 스님의 동지 법문 내용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복을 닦는다. 어디에 기부를 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너를 도와줬지? 그러니까 너는 나에게 이만큼 보답을 해야 되고 감사히 여겨야 돼 이런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평생 먹여주고 입혀주신 부모님에게 더 이상 바라면 안 되면서도 내가 이렇게 잘 컸고 지금 힘드니 더 도와주셔야 해, 아들 딸들에게도 내가 너를 이만큼 키우고 있는데 니가 이렇게 밖에 못해? 라고 무엇이든 보상을 바란다.
다른 이를 도울 때는 그런 상을 내지 말고,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보시를 하라, 무주상 보시를 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무루복을 닦을 수 있고 그 무루복은 보시 뿐 아니라 참선을 해야 닦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아침의 이 순간에도 송담 스님의 말씀처럼 마지막 죽음의 시간은 1초, 1초 흘러가고 있다. 어렸을 적 보다 나이를 먹어가는 지금 가슴 깊이 느껴진다. 아마 절에 나이 드신 어른들, 노인들이 많은 것이 이런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늘 하루 가족에게,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