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34일차
희망이 가득한 새해에 밝은 지 어느 새 4일이 지났다. 4일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가?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 매일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4일이라는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어버버 하다가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
2022년 새해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어린이 집이 1주일 동안 방학이라 아이들은 등원을 하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어린이 집과 선생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등원을 시킨 뒤 하원을 할 때까지의 나만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에 없는 동안에 집 청소를 하고, 장을 보고, 나만의 시간이 없는 게 문제다. 그림에는 공백이 필요하다. 아무리 멋진 그림이라도 빈 공간, 여백이 없다면 뭔가 답답하고 꽉 막힌 그림이라고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육아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문제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코로나. 코로나가 심해져 어디를 마음 놓고 아이들과 놀러갈 수도 없다. 어떻게 보면 사면초가요 진퇴양난이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 놀이터라도 나가야되고 책을 보러 도서관이라도 가야한다. 아이도 어른도 밖으로 나가고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 몸이 활동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주위를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아이의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이번 주에 방학이라 집에서 있는 시간들이 많다. 다른 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만 갇혀 있는 게 아니니 그나마 괜찮다. 동지가 있는 느낌이다.
삼시 세끼 밥을 해먹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을 데리고 장을 보러 가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반찬보다 간식 값이 더 나올 때도 있다. 세끼 중 한 끼 정도는 시켜먹거나 포장해 먹어야 그나마 살 것 같다.
자주 시켜먹는 반찬 가게가 있다.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고 맛도 괜찮다. 그날그날 네이버 밴드에 올려진 반찬 메뉴와 사진들을 보고 시킬 반찬을 고른다. 채팅으로 주문을 하고 입금을 한다. 그러면 집 앞으로 오후에 배달이 딱 온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입맛에 잘 맞는다. 주부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고마운 가게다.
육아휴직을 한 지 1년이 다 되 가지만 24시간 아이들과 붙어 있는 것은 쉽지 않다.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초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내공이 쌓이던 쌓이지 않던 24시간은 원래 힘든 것일까?
새삼스럽게 가정주부들이 대단해 보인다.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 시간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빠, 간식 줘”
“아빠, 언니가 나 때리려고 해”
“아빠, 행복이가 나보고 야라고 해요”
“아빠, 언니가 나보고 너래요”
“아빠”
“아빠”
아이들의 “아빠”소리에 귀에 딱지가 붙을 지경이다. 어떤 엄마들은 오죽하면 “제발 엄마 좀 내버려둬”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길면 좋은 점도 있다. 전에는 주의 깊게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 말, 행동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전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랬구나,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아침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군대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밥을 먹고 식판을 엎어서 설거지 내기를 했었다. 가위 바위 보를 이겨 내가 먹은 식판을 다른 사람이 닦아주는 기분은 최고였다. 아내가 말했다.
“그때보다 지금 설거지를 훨씬 더 많이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결론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재미있도록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아빠의 생각이 곧 아이들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