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42일차
‘윽 뭐지,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자나’
낮에 목욕탕에서 화장실 청소를 했다. 전날 아내가 화장실 샤워 호스에서 계속 물때가 나온다고 했다. 미리 락스를 풀어 호스를 1시간 동안 담가놔서 그런지 칫솔로 박박 닦아도 끝없이 물때가 나왔다.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수십 분 동안 계속 문질렀지만 어디에 보이지 않는 때가 또 끼었는지 계속 나왔다. 거의 때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닦고 지쳐 화장실을 나왔다. 심하게 검었던 샤워 호스가 말끔해졌다.
‘원래 이렇게 깨끗했구나’
인터넷으로 샤워 호스를 검색해 보았다. 어떤 제품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일반적인 황동 샤워 호스에 낀 물때가 화장실 변기에 붙은 세균의 12배 정도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샤워를 했던 건가’
어른들이야 그냥 그런가보다 샤워를 해도 돼지만 아이들이 문제였다. 특히 피부가 민감한 둘째 행복이의 피부에 악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다. 자세히 여러 제품들을 본 뒤, 물때가 끼지 않는 제품을 골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최근에 샤워할 때 검은 게 떨어져 나와 ‘뭐지? 물에 뭐가 들어있나?’라고만 생각했지 물때는 생각지 못했다. 아내가 얘기를 해주지 않았으면 한참이 지나서야 물때의 심각성을 알았을 것이다.
아내에게 잔소리는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문제를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청소를 한 뒤 커피를 한 잔 내려 소파에 앉았다. 화장실 청소에 지쳐 커피향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새들이 보였다. 새들은 옷을 벗어던져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옷을 잘 차려 입은 봄, 여름, 가을에도 새들은 나무 사이를 잘 날아다녔을 거라고. 나무 옷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갑자기 시를 짓고 싶어졌다.
<새들은 항상 날고 있다>
겨울에는 새가 잘 보여
나무들이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 곳으로 저 곳으로
저리 요리 갔다 왔다
그런데 그거 아니?
여름에도 새는 똑 같았어
이 곳으로 저 곳으로
저리 요리 갔다 왔다
나무가 옷을 벗어서
잘 보이는 것뿐이지
새는 항상 날고 있단다
우리의 마음도 그런 것 같았다. 물때가 끼었지만 원래는 깨끗한 샤워 호스였듯. 원래도 자유롭게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였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듯. 우리의 마음도 원래 깨끗하고 분별이 없었지만 살면서 마음의 때가 낀다. 때를 빡빡 밀어도 다시 물때가 낄 수밖에 없다. 마음 때를 닦아도 다시 마음 때가 낀다.
호스를 바꾸면 1시간이 걸리는 물 때 청소를 10분이면 할 수 있다고 한다. 내 마음 가짐을 바꾼다면 1시간이 걸리는 마음 때 정리를 10분이면 할 수 있을까? 혹은 10초, 1초만에도 가능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