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54일차
“이게 뭐야?”
“응 설 선물이야”
하원을 하고 돌아오니 현관 문 앞에 큰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바로 설 명절 전 미리 주문한 제주 은갈치 선물 세트가 잘 포장된 상태로 배송된 것이었다. 스트로폼 안에 아이스팩이 들어 있을 테지만 빠른 시간 내에 냉동 보관을 해야 했다.
마침 장모님이 근처에 사는 처남 네 아이들을 봐주러 와계셔서 저녁을 먹기 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잘 먹을게, 설날에 오면 해줄게 와”
“네 어머님”
다음은 친가 댁 차례였다. 친가는 집에서 5분 거리,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선물 상자를 들고 집을 나섰다.
“저 왔어요”
“왔냐”
“아직 안 자?”
“뭘 벌써 자, 11시에 잔다”
“11시? 나이 들수록 일찍 자는 거 아니야?”
“티비 프로 보고 머 하면 그 정도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8시 30분이라 저녁 드라마가 하는 시간이었다. 선물을 풀러 생선을 보여드리고 바로 냉동고에 넣었다.
“머야, 맥주도 없네?”
“너희 아버지 술 안 먹은 지 한 달이나 됐다”
“엥? 왜요?”
“저번에 코피난 뒤로 안 먹었어”
약 한 달 전, 아버지는 아침에 갑자기 코피가 나서 한참 동안 멈추지 않은 적이 있었다. 코를 세 게 풀어서 그랬다고 했는데 문제는 코피가 바로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근처 내과에 가서 지혈제를 처방 받았다고 하셨다. 어쨌든 그 이후로 걱정이 되어 술을 드시지 않은 것 같았다.
“집에 양주 있는데 마실래?”
“양주? 에이 됐어요, 냉장고에 청하 있던데 그거나 마시지 머”
아버지는 양주를 꺼내려고 하셨다. 괜히 오랜만에 양주를 마셔 몸에 좋지 않으실까봐 먹지 말자고 했다.
“내일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다”
“엥? 진짜?”
그렇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까먹고 있었다. 원래 결혼기념일을 챙겨드리지는 않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디 가시게요?”
“의정부에 있는 외삼촌 댁에 다녀오려고”
“결혼기념일이면 두 분이서 맛있는 것 드시죠”
“명절 전에 미리 다녀오려고”
굳이 결혼기념일에 엄마의 오빠, 즉 큰 외삼촌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오겠다는 아버지, 그리고 나중에 가면 되지 뭘 지금 가냐는 어머니는 서로 투닥투닥 거리셨다.
식탁에 앉아 아버지에게 술 한 잔을 따라드렸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부모님, 아버지는 며칠 전 수염을 깎는 데 아프셨다며 수염을 자르지 않아 코와 턱 밑에 하얀 수염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젊을 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으셨다. 흰 머리가 늘어나고, 수염도 하얘지고,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을 뿐이다.
애들 이야기, 제주도 여행 이야기, 정치 이야기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눴다.
“갈게요, 애들 또 보러 가야지”
“그래, 가라”
부모는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처럼 보이나 보다. 나도 내 애들이 커도 그럴까? 바로 집 앞에 있어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
아차, 결혼기념일이 몇 주 년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