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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공 Sep 15. 2023

엇갈림 그리고 기다림

어제는 회사 일을 마치고 아이들 학원 픽업을 가게 되었다.

픽업이라고 해봐야 학원 앞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정문 입구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먼저 둘째 아이 영어 학원 버스를 기다리러 갔다.

벌써 아이 친구 엄마가 막내를 데리고 나와 있어 가볍게 인사를 했다.

조금 후 둘째 행복이가 도착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친구 동생의 볼을 만져댔다.

첫째 사랑이 태권도 버스를 기다려야해서 행복이는 친구 엄마에게 잠시 맡아달라고 했다.

곧이어 사랑이가 탄 버스가 도착했다.

사랑이는 나를 보자마자 씽씽이(퀵보드)를 왜 가지고 나오지 않았냐고 짜증을 부렸다.

"엄마가 아빠한테 얘기 안했는데?"

"엄마한테 말 했단 말이야, 아빠가 가져와?"

"뭐?"

"나 과자 사게 씽씽이 가져와"

속에서 물이 조금씩 끓기 시작했지만 다시 온도를 낮추고 말했다.

"그래, 그럼 동생이랑 놀이터에서 기다려?"

집에 가서 문 앞에 세워져있던 씽씽이를 가지고 내려왔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했던지 사랑이가 "나 안놀아"라고 외치더니 집으로 뛰어갔다.

"행복아, 사랑이 왜 저래?"

"몰라"

"엥? 아무 일도 없었는데 저런다고?"

"사랑아, 아빠 그럼 과자 사러 갈꺼다"

사랑이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사랑이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고 행복이를 데리고 슈퍼로 갔다.

"어디야?"

"응? 슈퍼지, 애들 과자 사고 있어"

"사랑이 다시 과자 산다고 나갔는데? 휴대폰도 없는데"

"뭐? 난 집에 간다고 해서 안 나올줄 알았지, 어쩔 수 없지, 일단 사서 갈게"

집에 들어갔던 사랑이가 다시 과자를 사러 나왔는데 길이 엇갈렸던 것이었다.

어른들 음료수와 아이들 과자를 몇 개 사고 나오려고 하는데 슈퍼 정문에 사랑이가 서 있었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이에게 과자를 고르라고 했다.

사랑이는 심통이 난 얼굴로 과자도 고르지 않고 몸을 돌려 혼자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집까지  또 뛰기 시작했다.

잔잔해졌던 내 마음 속 물이 또 끓기 시작했다.

'으이그'

집에 왔더니 사랑이는 방문을 열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사랑아, 아빠가 사랑이가 집에 들어간 줄 알았어, 그래서 동생이랑 사랑이 것까지 같이 과자도 사왔어, 다음에는 꼭 사랑이 사고 싶은 것 사자?"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마음을 풀지 않던 사랑이는 결국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만든 계란찜에 족발 고기를 얹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사랑이가 배가 많이 고팠구나"

오늘의 교훈

아이가 삐져 집에 갔다고 바로 슈퍼에 가지 말자.

아이는 다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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