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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본능>

육아휴직257일차

by 허공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자기가 이제껏 살아왔던 집, 가족, 그리고 친구들, 주변 환경들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것을 부의 본능에서 저자 브라운스톤은 ‘영토본능’이라고 하였다. 그 영토본능을 이겨내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꼭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이사를 가는 것은 본능을 이겨야 한다.


2021년 10월 18일, 아내가 아침에 갑자기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 내년에 제주도에서 살아볼까?”

“제주도?”

“응, 회사에서 신청하면 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갑자기 왜?”

“애들도 지금 어릴 때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전에도 몇 번 제주도로 이사가볼까? 요새 유행하는 한 달 살기 해볼까? 라는 대화는 몇 번 해보고 알아본 적 있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제주도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동경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알아보니 제주도로 이사를 가서 살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우선 우리가 원하는 자연과 함께 하는 전원주택에 살게 되면 신경 쓸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집 관리, 제주도에 많다는 각종 벌레들, 보안 문제 등으로 인해 전원주택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쏙 들어갔다. 나야 상관없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쉬도 때도 없이 나오는 벌레를 보면 무서워할게 뻔했다.


텃세? 제주도는 예전부터 외부인에 대한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이사를 가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니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한 번 회사에 지원해 볼까? 되면 같이 지원해야겠지?”

“한 명이 되면 자동으로 되는 거 아니야?”

“근데 가게 되면 갑자기 발령 나서 이사 준비할 시간도 없을 텐데”

“그런가?”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발령이 몇 달 전에 나는 게 아니라 몇 일전에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히 집이나 이사 준비를 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었다.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하지? 학군지로 가야하나”

“아직 어려서 학군지로는 안가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학원은 주변에 있어야지”

“제주국제학교?”

“엥? 우리가 그 학비를 어떻게 해”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 유치원과 학교였다. 이제 7살, 6살이 되는 아이들 1년만 지나면 큰 애는 초등학생이 된다. 아무래도 교육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벌써 주위만 봐도 영어유치원에 각종 학원들에 장난이 아니다. 우리 애들은 집에서 ‘윙0’라는 학습기기로 학습하기, 미술학원 다니기 외에는 따로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는 않다.


아내가 출근한 뒤 회사에서 몇 년 전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간 동기에게 연락을 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미 몇 번 물어봤지만 궁금한 점을 다시 물어보았다. 그 동기는 현재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고, 제주도가 좋아서 아마 당분간 다시 올라올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결론은 여기나 거기나 애들 키우는 것은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바다가 보이는 전원주택에 살지 않는 이상 아파트에 살면 평소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하원을 하거나 주말이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실컷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제주도의 국제학교 학비를 알아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더 알아봐야겠지만 제일 싼 곳만 해도 4천에서 5천만 원은 기본으로 드는 것 같았다. 애들 2명을 보내면 집안 살림이 몇 년 내에 다 사라질 듯 했다.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도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갔다.


영토본능, 어쨌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고 낯설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뭐 금세 적응은 하겠지만 쉽게 발걸음이 띄어지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지금 아니면 언제 제주도에서 살아보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더 나이가 들어 아이들이 공부를 한창 할 때는 내려가고 싶어도 못 내려갈 수도 있다. 이래저래 고민이다.

제일 문제는 이것이다. 일단 신청해서 올해 바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것, 되기 전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발령이 나야된다는 것, 미리 김칫국 마시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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