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순이 Dec 12. 2023

2023년 1월 일기모음 2

2023년 1월 11일 수요일


아침에는 도저히 준비를 못 할 것 같아서 전날 저녁에 미리 만들어서 냉장보관해 뒀던 참치샌드위치를 직장에 챙겨가서 점심식사 때 챙겨 먹었다. 미리 만들어두면 빵이 눅눅해지거나 맛없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생각보다 맛있었다. 참치와 마요네즈에 양파가 아닌 올리브가 꽤 조합이 좋다는 것을 이번에 먹어보고 처음 알았다.


저녁에는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양념치킨이 생각나서 사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어찌저찌 잘 참아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양념치킨이 생각난다라. 아무래도 맛있는 음식, 특히 기름에 튀기고 매운맛이 나며 탄단지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일시적이나마 스트레스가 풀리니까. 대신 집에 있는 재료로 떡볶이를 만들어먹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세일한다는 이유로 유통기한 내에 다 먹지도 못할 대용량 고추장을 덜컥 사서 유통기간이 한참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먹고 있는 중이다. 딱히 곰팡이가 피거나 색이 변하거나 하지 않고, 냄새나 맛에도 이상이 없으며, 먹어도 별 탈이 없는 걸 보니 오래돼도 문제가 없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니까 올해 봄오기 전에는 얼른 다 먹어치워야지 싶다.


떡볶이를 만들어먹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갈비만두도 구워 먹었다. 식사를 하고 오디오북을 들었다. 김영하가 쓴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집이다. 토요일 독서모임 때 무슨 책을 들고 갈까 고민 중인데 이 책을 들고 갈까 어쩔까 고민 중이다.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짠테크는 오늘 하루 파업하기로 한다. 퇴근 후 오랜만에 맥도날드에 가서 행운버거세트와 선데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먹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오기 전에 다이소에 들러서, 먹고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있으면 좋고 앞으로 쭉 사용할 물건들을 몇 가지 샀다. 계획에 없던 다이소에 들르는 바람에, 마트에 들러서 식빵을 산다는 걸 그만 깜빡했다. 내일 점심식사로 샌드위치를 만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식빵을 못 사서 어쩔 수 없이 메뉴를 바꿔야 한다. 고민 끝에 양배추볶음, 돈까스, 햇반으로 결정했다.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하찮고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지 매일 일기를 써보니까 느껴진다. 문제는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어제보다는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소한 '시도' 는 했다.


2023년 1월 14일 토요일


퇴근 후 독서모임에 갔다. 모임이 끝나고 장소를 옮겨서 더 얘기를 나누자고 했는데 살짝 피곤해서 혼자 먼저 빠져나왔다. 동네에 도착했을 때 배가 고파서 붕어빵을 포장해 와서 먹었는데 양이 안 차서 떡볶이도 만들어 먹었다. 고추장, 가래떡, 양배추만 넣고 만들었는데도 꽤 맛이 좋다. 유튜브로 더글로리 요약본 봤는데 뭔가 재밌으면서도 기분이 나빠진다.


2023년 1월 15일 일요일


일요일 아침, 눈뜨자마자 3호선을 타고 수창청춘맨숀 무인북카페에 갔다. 사람 없고 조용하고 자리도 널찍하고 조도도 적당하고 커피까지 무료라서 마음에 든다. 커피가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무료라서 불만은 없다. 문득 여기서 독서모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상황 대처가 어렵겠다. 일단 괜찮은 단체석이 두 개가 있으나 그것뿐이고, 자리가 있을 거라 믿고 왔는데 갑자기 테이블에 사람이 앉아있을 경우 다른 카페로 옮기자니 주변이 너무 휑하다. 어제 독서모임을 했었는데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에 자리가 없어서 급하게 자리를 옮겼다. 주변에 카페가 모여있는 곳이라 상황 대처가 가능했다. 북카페에 10시쯤 도착해서 3시쯤 그곳을 빠져나갔으니 대략 5시간 정도는 앉아있었다. 주로 가벼운 에세이, 사진 위주의 요리책, 그리고 에바알머슨의 작품집을 읽었다. 슬슬 지루하기도 하고 허기가 져서 그만 일어났다.


2023년 1월 16일 월요일


저녁에 집에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누구지. 옆집에 와야 할 배달기사가 호수를 착각했나. 아니면 층간소음 때문에 아래층에서 올라왔나. 그 외에는 생각해 낼 수 있는 경우가 떠오르지 않았다. 반응이 없으면 저러다가 가겠지 혹은 어디서 나온 누구라고 말을 꺼내면 그때 대답해야지 싶어서 일단 가만히 있어봤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집요하게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들겨댔다.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내가 먼저 누구냐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은행에서 나왔단다. 은행에서 올 일이 뭐가 있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집주인에게 연락 못 받았냐고 잠깐만 문을 열어줄 수 없겠느냐고 말했다. 의심스러운데 어쩌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현관문 외시경, 안전고리, 인터폰 뭐 하나 갖춰진 게 없는 집인지라 굉장히 긴장됐다.


결론만 적자면 현재 내가 근저당 잡힌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데 임대차 보호법에 의거해서 우선순위 임차인인 내 보증금을 보호해 주겠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내가 실제로 여기 거주하고 있는지 조사차 방문한 거였다. 나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좀 찝찝해서 일단 그 은행 직원분이 가져온 서류를 보여달라고 하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사올 때 이미 전입신고도 하고 확정일자도 받았고, 설령 우선순위가 아니더라도 대구시에서 2,300만 원까지는 보호해 줄 거고 뭐 걱정할 일이 일어나겠나 싶다.


아니 근데 도대체 왜 죽어라 벨 누르고 문 두들기면서 말 한마디를 안 하냐구요 아저씨. 아무튼 어제는 그런 일이 있었고, 헬스장에 가기 전에 잠깐 카페에 들렀다. 언제부터인가 돈이 아까워서 커피도 잘 안 사 마시는데, 사 마셔도 제일 싼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만 사 마시는데, 오늘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다른 메뉴를 주문해 봤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고 소비를 하면 일시적이나마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만만한 소비가 커피를 사 마시는 일이다. 때마침 카페에 아인슈패너가 신메뉴로 출시됐고 일주일 반짝 할인 중이라길래 주문해 봤다. 근데 이런 얘기 적으니까 진짜 궁상맞다. 기껏 해봐야 3,500원이라고. 하지만 단돈 천 원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게 절약의 시작이니까. 아인슈패너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아인슈패너를 홀짝이면서 모임단톡방에서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으니 갑자기 순식간에 기분전환이 됐다. 아무튼 적절한 소비와 적절한 모임활동은 정신건강에 좋은 것으로.


가만 보면 나도 은근히 머니셰임에 빠져있다. 일단 돈에 대한 열등감, 부끄러움이 너무 심하다. 완전히 터놓고 돈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살면서 아직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연휴 때 모임에서 하게 될 경제토크 때 어떤 얘기를 할지는 토요일 이후 느긋하게 생각해 보련다. 확실히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라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마냥 나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을 했더니 오늘 오랜만에 운동이 엄청 잘 됐다. 아무래도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2023년 1월 17일 화요일


한 며칠 개수대가 꽉 찰 정도로 설거지를 미뤄뒀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오늘 퇴근 후 곧장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는 늘 하기가 싫고, 제때 안 하고 미루다 보면 결국 시작하기가 괴로워진다. 하지만 막상 하고 있으면 즐겁고, 다 끝나고 깨끗해진 개수대를 보고 있으면 더 즐겁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서 탁탁 털어서 널었다.


다음 독서모임 때는 책을 지정해서 읽기로 했다. 지정도서는 송길영의 '그냥 하지 말라' 로 정해졌다. 모임원 중 한 명이 이 책을 추천했고 그냥 보자마자 꽂혀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더니 이내 지정도서로 채택됐다. 목차를 훑어보니 엄청 트렌디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 읽고 나면 할 말이 꽤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1월 19일 목요일


직업과 관련하여 주변에서 좋지 못한 소리를 여러 차례 듣고 나니 이제는 어디 가서 거의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직업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한 며칠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어디 가서 털어놓을 데도 없고 글로나마 풀고 싶은데 글에서조차도 솔직하게 적지 못하는 걸 보면 그동안 진짜 심하게 시달렸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내가 직업에 대한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깊게 사귀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부모자식 간에도 일정 수준의 자격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관계유지가 어려워지는 게 내가 살면서 겪은 인간관계의 현실이다.


작년까지 종종 연락하고 지내던 사람은 내 직업을 듣고는 매번 만날 때마다 직업 얘기를 꺼냈다. 미래비전을 운운하며 이직을 권유하고, 그 나이쯤 되면 다들 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안정적으로 사는데 너는 어쩌고 저쩌고 정신 차리라는 둥, 심지어 책임감까지 들먹였다. 역시 직업을 말하지 말걸 그랬다. 하지만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도 말 못 하는 인간과 관계유지를 하려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결국 이러나저러나 끝은 똑같겠다.


모두 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임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마는 나는 지금 이 안주하는 생활을 벗어나고자 하는 능력도 의지도 없다. 흔히들 말하는 그 좋은 직장은, 안 다니는 게 아니라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거다. 나도 내 나름대로 많은 시도를 해봤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뿐이다. 책임감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능력이 없는 것으로 하자. 피곤하다. 이제는 그냥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쉽게 살고 싶다.


한참 전에 부모로부터 독립했고, 스스로 벌어서 꼬박꼬박 세금 내고 밥 해 먹고 저축하면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그럴듯한 직장을 다니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사는 사람이 아닌 것 마냥 취급받는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의 기준이 너무 높다. 결혼적령기가 지난 미혼의 단순노무서비스직 종사자는 이 사회에서 차마 정상인이 될 수 없음을 내 주변 사람들의 취급을 통해 매번 실감한다.


한 며칠 있었던 에피소드는 늘 그렇듯 모두 인간군상에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언행을 겪으며, 황당하고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우습고 기가 차고 기분이 상하고 우울하고 때로는 즐겁고 고맙고 보람되기도 한 그런 에피소드들. 그나마 오늘 점심시간쯤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업무와 관련된 일이니 서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굳이 직장 일까지 끌어다가 구구절절 글을 쓸 필요도 없고 딱히 재밌는 일도 아니니까 그냥 속으로 삭이련다.


하루종일 재채기가 (콜록X 에취O) 나오고, 코가 싸하고 맑은 콧물이 나오며, 눈이 충혈되고 시큰거린다. 눈이 안 좋으니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감기는 아닌 것 같고 알레르기반응 같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아니면 오늘 미세먼지가 심했던가.


퇴근 후 헬스장에 가기 전에 잠깐 카페에 들러서 피스타치오 아인슈패너라는 것을 주문했다. 올해 들어 짠테크니 뭐니 하면서 절약을 많이 했는데, 지금껏 쓴 식비를 합산해 보니 생각보다 금액이 많지가 않다. 딱히 끼니를 거르거나 하지 않고 삼시세끼 그럭저럭 잘 챙겨 먹었는데도 현재까지 발생한 식대가 오만 원대다. 아직 달이 바뀌진 않았지만 그래도 2/3는 지났다. 이 정도면 꽤 적게 나온 편이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가서 먹은 것이 식비 줄이기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점심을 거의 밖에서 사 먹게 되면 한 달에 못해도 15만 원은 나온다. 처음에 예산을 짤 때 월 식대를 20만으로 책정했는데, 지금 상태로 봐서는 10만 원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물론 기존에 집에 쌓아둔 식재료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어쨌거나 예산이 남아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헬스장에 갔다.


확실히 피곤할 때는 감정이 나빠지고, 나쁜 감정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온다. 지금은 운동을 했더니 상쾌하고 좋다. 사실 기분이 막 좋다기보다는 그냥 별 생각이 없다. 그래서 좋다. 집중할 것이 없으면 금방 생각에 빠지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온다. 내가 정말로 옳은 결정을 한 것인가. 꼭 이래야만 하나. 하지만 이미 결론이 났으니 번복할 수 없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오늘 헬스장에서 남녀가 함께 운동하는 걸 봤다. 여자가 남자 스쿼트 보조해 주는걸 난생처음 봤다. 둘이 커플인지 아니면 단순 운동친구인지 정확한 관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함께 으쌰으쌰 하며 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래와 같이 운동했다. 둘 다 대근육을 사용하는 에너지소모가 많은 운동이라 평소에 이 둘을 동시에는 잘하지 않는데, 오늘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


스쿼트 50kg 5×5

데드리프트 70kg 5×5

매거진의 이전글 2023년 1월 일기모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