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순이 Jan 18. 2024

연애

봄 글쓰기모임 숙제1

1


주변 사람들로부터 남자친구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는다. 사람들이 사회생활 차원에서 뭐라도 말을 갖다 붙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싶어서 괜히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한 사람에게서만 들은 말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들은 말이다 보니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서로 닮은 모양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거나 함께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우리 눈에도 서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커플들을 봐도 어딘가 묘하게 외모가 닮아있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닮았다는 말이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그림체가 비슷해 보인달까.

 

사람들에게 남자친구와 내가 서로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커플들은 어떤가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리의 커플들을 관찰해 봤다. 확실히 닮았고 잘 어울리며 커플이라는 느낌이 분명하게 있다. SNS에서 커플들이 찍어 올린 사진과 글들을 구경했다. 역시나 닮았다. 특히 어떤 유부녀가 자신의 SNS에 자신과 남편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신기하게도 둘이 닮았다. 남매 같은 사람끼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산다." 라며 자화자찬을 하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애초에 닮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끌려서 만나는 건지 만나서 함께 생활을 공유하다 보니 서로 닮아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외모라는 건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식습관, 생활습관, 건강상태 따위로 인해 달라지기도 하니까, 함께 비슷한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비슷한 외모로 변해서 결국에는 서로 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뭐가 어찌 됐든 커플들은 그렇게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사실 완전히 다르게 생긴 커플들도 있지만, 어딘가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같은 단지에 살아서 종종 마주치는 이웃 부부의 경우, 여자는 하얗고 깡마르고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덩치가 크고 푸근한 인상이다. 뭐가 어떻게 잘 어울리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 뭔가 잘 어울린다. 조화롭다는 느낌이 든달까. 이렇게 적고 보니 답을 정해놓고 너무 막 갖다 붙인 것 같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친구의 외모가 마음에 든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친구와 닮았다. 그럼 남자친구를 닮은 내 외모도 내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가만 보니 내 외모도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나는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내 외모를 싫어했다. 그런데 그토록 싫어하는 나를 닮은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사실 나는 애초에 내 외모가 내 취향에 가까웠고 어느 정도 자기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서 내가 나를 싫어한다고 착각하며 자기혐오에 빠져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게는 이제 내 외모를, 즉 나 자신을 좋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나를 닮은 내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의미고, 나를 좋아해 주는 내 남자친구의 마음을 믿고 존중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테니까. 남자친구가 나를 좋아해 준 덕분에 나도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친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2

 

나는 수년 전에 주식투자를 잘못해서 전재산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금액만 자그마치 수천만 원이다. 이 수천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돈이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나한테는 이십 대부터 시작해서 삼십 대가 될 때까지 수년동안 주육일을 꼬박 단순노무직으로 일하며 안 먹고 안 입고 인내해서 모은 돈인데, 그 피 같은 돈을 손가락 까딱 몇 번으로 허무하게 날려버렸으니 얼마나 자책감이 심했겠는가.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은 어렵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 이야기를 주변에 떠들고 다녔다.

 

사실 내 이야기를 내가 굳이 나서서 떠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 이야기가 나왔을 뿐이다. 돈 이야기는 만인의 공통 관심사이니까. 딱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으니까 괜히 더 떠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주식으로 금전적 손해를 입은 사람을 좋게 봐주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잘 없다. 굳이 위로를 바라지는 않지만 위로는커녕 걱정을 빙자한 무시와 조롱이 돌아왔다. 사실 충분히 예견된 결과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게 일종의 자학이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남자친구는 내 주식투자 실패담을 들었던 여러 사람들 중에서 나를 비난하거나 비웃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 실패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봐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남자친구는 내게, 그 돈이 지금은 엄청나게 큰 액수일지 몰라서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금부터 다시 얼마든지 모으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리고 주식투자로 나보다 훨씬 더 망한 주변 사례들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들려줬다.


실제로 나는 손해입은 금액을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됐고 덜 먹고 덜 쓰며 저축을 하면 됐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모은 돈으로 이제는 조금 더 안정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만약 한창 젊을 때가 아니라 평생을 손해 한번 안 입고 탄탄대로 잘 살다가 예를 들어 퇴직 후에 이런 일을 당했다면 아마 수습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안정적인 투자는 다름 아닌 연금저축펀드다. 연금저축계좌에 SOL미국배당다우존스와 TIGER미국 S&P500을 꾸준히 담아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주식을 바로 사지 않고 미국지수추종 ETF를 사는 이유는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 때문이다. 매년 세액공제를 받을 것을 생각해 보면 당장 몇 푼 마이너스를 입은 게 전혀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투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6%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는 중이다.


다우존스의 경우 배당금이 매달 들어오기 때문에 투자하는 재미가 있다. 이게 아무리 수십 년 후의 노년을 바라보고 하는 장기투자지만 눈앞의 소소한 결과물이 있으니 긴 여정이 지루하지 않다. 남자친구가 알려줘서 관심이 가서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이것으로 노후 대비를 하기로 했다. 남자친구나 나나 모두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딱히 큰돈이 나가는 사치스러운 취미를 가지지도 않았으며, 아낄 때는 아끼고 쓸 때는 최소한의 할 일은 해놓고 적당히 쓴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할 일이란 수입의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일이다. 둘 다 청년적금과 연금저축펀드와 주택청약통장을 활용하여 월급의 일정 금액을 저축하고 있다. 그 밖에 남은 돈은 CMA에 넣어두고 소소하게 이자놀이를 하거나 종종 소량의 주식을 재미 삼아서 한다. 근래에 일본엔화가 최저가를 찍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엔화환전과 일본엔선물 ETF 투자로 소소하게나마 환차익을 얻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딱히 트러블이랄 게 없다. 돈 문제에 관해서라면 적어도 누구 하나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았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치관과 사고방식 따위가 너무 달라서 대화로는 조율이 안 되는 속 터지는 상황까지 갈 일이 없다. 앞으로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금까지 보아온 모습으로 미래를 예측해 본다면, 나나 남자친구나 돈문제로 상대방을 괴롭힐 일은 웬만해서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돈을 벌 줄 알고 쓸 줄 알고 모을 줄 아는 이 돈과 관련된 모든 능력들은 단순히 물질을 탐닉하는 수준을 떠나서 충동조절 능력과 연관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다행히 어느 정도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끼리 만나서 연애를 하고 있다. 서로의 외모가 좋다. 돈과 관련해서 가치관이 맞다. 이 둘만 맞다면 나머지 것들은 알아서 딸려오게 되어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닮았고 잘 어울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가 없어도 너무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