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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May 07. 2024

취미

여름 글쓰기클럽 숙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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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란 전문성을 떠나서 단순히 즐기는 일을 뜻한다. 최근 나한테는 취미랄 게 딱히 없다. 평소 즐겨하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영상물 시청이 있긴 하다. TV 프로그램, 영화, 드라마, 유튜브 영상 시청 따위가 취미라면 취미겠지만, 이런 것을 취미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왜 그럴까. 이미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일,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을 두고 굳이 취미라고 말하기가 싫은 것이다. 단순히 이런 이유가 취미라고 말 못 할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 들인 시간에 비해 딱히 발전이 없는 것 같고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것 같아서 이다. 그나마 이런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소감문을 작성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결과물이라도 만들어낸다면 이 일을 감히 취미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행위를 일차원적으로 소비하고 끝낸다는 게 문제다.


취미란 단순히 즐기는 일을 뜻하는 말인데, 나에게 취미란 단순히 즐기는 걸 떠나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행위인가 보다. 뭐든 긍정적인 결과가 있어야 과정도 재밌다. 소모적인 행위는 그 과정이 얼핏 즐거운 듯하다가도 그 행위가 끝나고 난 후 남는 결과가 없으면 허무하다. 뭐든 긍정적인 결과가 있어야 기대심리가 생겨서 과정도 더 재밌어진다. 영상물 시청의 경우, 보는 동안 잠깐은 재밌다가도 어느 정도 그 행위가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허무함이 밀려온다. 딱히 뭘 얻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잠시잠깐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어떤 영상물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에 내가 접하는 영상물들은  남는 게 크게 없는 종류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예로 술 같은 경우, 과정 자체만으로 재밌긴 하지만 음주 후의 결과가 빤해서 자주 즐기고 싶지는 않다.


다시 영상물 얘기를 하자면, 앞서 얘기했듯이 영상물을 보고 감상문을 쓰면 남는 게 있어서 좋다. 가령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내 생각과 느낌, 줄거리 요약 따위를 글로써 기록하고 나면 그냥 보고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그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만족감이 커진다. 사실 영상을 시청하고 그 소감을 글로 남기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 재밌었고,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을 문자로 바꾸는 게 어렵다. 내가 뭘 느꼈는지 정확하게 잘 몰라서일 수도 있고, 내가 뭘 느꼈는지 어렴풋이 알겠으면서도 어휘가 부족해서 표현을 잘 못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분명 재밌었다. 뭐가 어떻게 재밌었는가. 어 그게, 그냥 재밌더라. 뒷 내용이 예측이 안 돼서 막 궁금하고 배우들도 멋있고 그냥 뭐, 어쨌든 재밌더라. 영화 잘 만들었더라, 끝. 누군가에게는 이게 최선이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글을 쓰기 위해 애를 쓰고 작정하고 깊이 파고들면 더 길게 더 풍부하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글쓰기가 취미였다. 앞서 언급했듯 최근에 별다른 취미가 없고, 그나마 영상물을 시청하는 게 취미 아닌 취미인데, 예전에는 이런 행위를 한 이후 이것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독후감과 영화감상문 따위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알아서 척척 쓰고 일기도 자주 썼다. 글을 쓰는 게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글을 좋아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일단 글을 안 쓰고 있다.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잘 안 쓰고 있다. 글이라는 건 내 생각과 감정과 일상 따위를 문자로 기록한 걸 뜻하는데, 이 기록의 과정에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어떻게든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그것을 문자로 옮겨야 한다. 요즘은 생각을 하는 게 귀찮다. 그 생각을 문자로 옮겨 쓰는 건 더 귀찮다. 무언가를 하는 게 귀찮다는 건 결국 그것이 하기 싫다는 소리일 텐데, 잘 모르겠다. 쓰고 싶은데 귀찮다. 잘 안 써진다. 한때는 안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간신히 글을 썼지만 다 쓰고 읽어보니 너무 형편없다. 아무래도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게 형편없는 모양이다. 시간 들여 썼지만 보관할 가치를 못 느끼겠어서 저장도 하지 않고 없애버렸다. 단순히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어떻게든 다시 글을 써야겠다. 최근에 글을 쓰기 위해 글쓰기 모임에 다니고 있다. 글을 혼자 쓰는 것보다 모임에 다니면서 쓰면 강제성이 부여돼서 억지로라도 쓰게 되어서 글쓰기에 동기부여를 얻을 수가 있다. 글을 쓰는 게 숙제고, 그 숙제를 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모임을 지속할 수 없다.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서 여러 차례 시도하다가 이윽고 모임에까지 다니고 있지만, 사실 내가 진짜로 글을 쓰고 싶은지 글을 쓰는 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한때는 글쓰기에 취미가 있었고 그 취미에 긍정적인 기억이 남아있으니까 그 취미를 다시 살려서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글을 쓰는 것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으니 취미로 삼기에 가성비가 좋아서 부담감이 없다는 점이 좋고, 써놓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있다는 성취감에 기분 전환이 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효능이 좋아서이다. 글을 쓰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좋다. 하루하루 속절없이 지나가 버리는 시간을 글로써나마 기록해 둔다는 게 좋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는 게 귀찮다더니 지금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모순인가. 사실 생각하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생각이 워낙에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되는데 이걸 또 의식적으로 문자로 기록하며 정리하는 과정이 수고스러운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그래도 이 수고를 거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한때 왜 글쓰기를 좋아했고 또 취미로 즐겨왔었는지를 복기해 봤다.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다.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싶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인생에 즐길거리가 있어야지 사는 맛이 난다. 요즘 어쩐지 좀 무료하다.


이번에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의 첫 번째 숙제는 ‘취미’ 라는 공통주제로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처음에 취미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나는 취미가 없는데 뭘 써야 하나 고민했고, 최근에 그나마 즐기는 게 영상물을 보는 거긴 한데 이걸 취미라고 말하기 좀 그렇지 않나 생각했다. 한때 그런 영상물, 즉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보고 감상문을 썼던 과거를 떠올렸고, 하긴 내가 글쓰기가 취미이긴 했지, 하고 생각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에세이 한편이 뚝딱 써졌다. 확실히 강제성이 주어지니 글이 써진다. 글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여기서 더 마음에 들게 쓸 자신은 없으니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한동안 글을 거의 안 썼는데 이렇게 시작이라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 글을 시작으로 차츰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글 쓰는 게 취미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글쓰기를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나는 취미가 아무리 전문성 없이 단순히 즐기는 행위라지만, 어느 정도 잘하는 수준을 갖춘 상태로 그것을 즐겼으면 좋겠고, 소모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다주며,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뭐든 잘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재미를 느끼기 힘들며, 결과가 없으면 기대심리가 사라져서 금세 흥미를 잃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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